김경순

그렇게 1시간여를 끌려 올라가니 온통 하얀 눈을 덮고 있는 구상 나무숲이 나왔다. 이국적인 풍경에 남편도 넋을 잃은 표정이다.

이제 이곳부터는 막대기가 필요 없다. 평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은 막대기를 숲으로 던지더니 슬그머니 내 손을 꼭 잡는다. 우리는 마치 비밀스런 통로를 지나는 듯 서로를 꼭 잡고 걸어 들어갔다. 얼마쯤을 걸어갔을까. 갑자기 탁 트인 설원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넓은 평원인 이곳은 선작지왓이다.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우리는 어느새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가만 보면 이 세상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제 몸을 내어 주기 싫은 듯 서있는 이산도, 험준한 산등성을 오르면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 해 주니 말이다.

눈이 너무 많이 온 탓에 백록담은 포기하고 우리는 윗세오름에서 다시 온 길을 더듬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라 갈 때는 그리도 미덥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얼굴이 고통으로 찡그러져 있다. 산은 올라 갈 때보다 내려 갈 때가 더 위험 하다고 했던가. 디스크 증상이 있던 남편은 내려오는 동안 몇 번을 눈 위에 누워 허리를 펴곤 했다.

이제는 내가 남편이 넘어지지 않도록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한다. 내려오는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영실 휴게소에 들러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아스팔트길을 걸어오는 내내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내려왔다.

어느 시인은‘부부란 결코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의 속뜻은 아마도 서로의 고유함을 지켜주자는 속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방송에서도 그렇고 가까운 내 주변에도 이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남편 아닌, 다른 남자가 생기고, 부인이 아닌 여자가 생기고, 과소비를 한다는 이유로, 또는 정 많은 까닭에 보증을 서서, 서로의 성격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그 외에 서로만이 알고 있는 이유로 이혼을 하고 있다.

물론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 그래서 이혼이 유일한 돌파구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고 차선책이 될 수 있다면 서로의 세계에 대해 한번쯤 돌아다보는 것은 어떨까. 그동안 남편과 아내라는 이유로 서로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거나, 공유하자는 식의 논리를 펴지는 않았는지.

부부가 되기 전, 우리는 분명 애인이었다. 애인이라는 말을 풀이 해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왜 부부가 되면 애인이 될 수 없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점점 커지는 배우자에 대한 소유욕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여보, 허리 괜찮아?”

“당신은? 다리 안 아파?”

오늘, 우리는 높은 산을 등반했다. 그리고 지금, 서로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은 산을 오를 때 우리가 이야기 하던 그 애인사이의 모습 그것이었다. 이십년을 같이 산 우리 부부는 어느새 서로의 것을 주려 안달 난, 애인이 되어 있었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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