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희

밍 티엔 라이라이 짜이지엔(明天來 在見), 씨 유 투마로우(see you tomorrow)

요즘 들어 되도 않는 말과 손짓, 발짓을 다하면서 언어소통을 하며 지낸다.

우연한 기회로 몇 달 전부터 다문화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다.

외국인들과 대하는 일들이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는데 이젠 적응해 즐겁게 지내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 근무하기 전까지는 나도 외국인이라면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뭔가가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다 보니 선뜻 먼저 다가서기가 어려웠다.

“여보세요. 음성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입니다.

이주여성들에게 한글교육을 해드리는 곳이니 내일 오시겠어요?”

“몰라요”

뚝! 하며 전화가 끊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몇 명과 통화가 되어 처음 센터에서 10명의 이주 여성들의 한글교육이 시작되어 몇 달 만에 100명의 회원이 되었다.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 의심스러운 말투, 뭔가가 불안해 보이는 표정. 내가 그들에게서 느낀 첫인상이었다.

처음 엄마를 따라 온 아이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낯가림이 심했다. 그래서 눈만 마주쳐도 울었다.

‘그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진심으로 대하면 알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가까이 다가와 있는 걸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까워지는 일은 언어나 행동보다는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먼저인 것 같다.

처음 이주여성들을 보았을 때 겉모습만 보고도 외국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들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가끔은 그들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이곳에 근무하면서 나에겐 20년 차이가 나는 친구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몇 달 전 필리핀에서 시집을 온 친구가 있다.

온 지 일주일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 날 우리 센터에 등록을 했다.

그 날로 한글을 배우러 매일 오다시피 하며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한국말을 잘 몰라 자신의 의사표현은 잘하지는 못하지만, 순수하고 꾸밈없는 모습과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자긴, 좋겠다. 젊어서.”

“네, Why?”

두 손을 들고 어깨를 들썩이며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나만 빤히 쳐다본다.

“누가 통역 좀 해봐. 내가 결혼 일찍 했으면 너 만한 딸이 있다고.”

나의 말에 다른 친구들이 웃으며 통역해 주었다.

“선생님이 엄마? 아니, 선생님 친구.”

“그래, 엄마를 하던지 친구를 하던지 맘대로 해.”

“선생님 친구. 친구.”

“그래 친구 하자. 친구해.”

우리의 대화는 늘 이렇다. 아직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표정만 보고도 알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오늘도 멀리서 내 모습만 보고도 달려와서 끌어안으며 좋아하는 20살의 친구를 보며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다름이 아닌 같음. 남이 아닌 우리가 되어버린 젊은 외국인 친구들이 있어 힘이 난다.

20년을 뛰어 넘은 친구들아, 사랑한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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