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바람이 불어봐야 비로소 억센 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뜻으로, 곤란과 시련을 겪어 봐야 비로소 그 사람의 진가를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전한(前漢)말기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황제(皇帝)의 외척(外戚)인 王莽(왕망)이 한(漢)왕조로부터 나라를 빼앗아 신(新)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악정(惡政)이 계속되자 괴로움에 시달리다 못한 농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들고 일어났다.

한 왕조(漢 王朝)의 일족인 劉秀(유수)도 원현(苑縣)에서 병사를 일으켰다.

유수의 군대(軍隊)가 영양(潁陽)의 영천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 그 지방의 王覇(왕패)라는 사람이 친구들과 함께 유수의 부대에 가담함으로써 큰 힘이 되어주었다.

23년 6월 유수의 1만명 군대가 곤양(昆陽)에서 왕망의 40만 대군과 격돌하여 예상을 깨고 승리했을 때에도 왕패는 큰 공훈을 세웠다.

이 후 유수군은 갱시제(更始帝)를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였다.

얼마 후 황제의 견제(牽制)로 신변(身邊)의 위협을 느낀 유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허베이(河北) 지방의 평정을 자청하였고, 왕패도 따라 나섰다.

그러나 이 원정은 매우 힘든 길이었다. 유수의 군대가 황하를 건널 때 농민군과 맞붙어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여 도망하는 자가 속출하였으며, 왕패와 함께 유수편에 가담했던 수십명의 친구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으나, 왕패만은 끝까지 남아 유수를 감격하게했다.

유수는 왕패를 붙들고 말했다.

“영천에서 나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구나.

오직 그대만이 남아서 힘쓰고 있으니 ‘세찬 바람이 불어야 강한 풀을 알아볼 수 있다(疾風知勁草·질풍지경초)’고 하더니.”

<해오름학원장, 극동정보대 겸임교수 서범석의 한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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