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옥

이웃사촌은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사오년 전쯤 되었을까.

옆집에 이사 온 아기 엄마를 알게 되었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어울리고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털어놓고, 그저 소소한 얘기도 들어주고, 그렇게 친형제처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애기 엄마가 청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동안 정이 들었는데 이사할 날이 다가오자 떠나고 나면 못살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기 엄마와 내가 더 친해진 계기가 있었다. 그 엄마는 아는 사람 없이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 음식을 하면 나에게 나누어 주고 눈만 뜨면 같이 어울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하루라도 보이지 않으면 보고 싶고, 궁금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아기엄마 부부는 서로간의 성격차이라고 할까. 이삼일이 멀다하고 큰소리가 났다. 하루는 태어난 지 백일이 갓 지난 아기를 우리 집에 맡겨놓고 그녀는 연락도 없이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녀가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다. 첫인상이 차갑고 까다로워 보여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 생각은 얼마나 지나지 않아 사라지게 되었다. 그녀는 모습과는 달리 깔끔하고 음식 솜씨도 뛰어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혈연간도 아닌데 정으로 맺어진 이웃사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를 교체중이다. 내가 사는 곳은 칠층이라서 걸어 다닐만하다.

높은 층에 사는 이들은 불편함이 많지만 그래도 걷는다는 것이 꼭 힘들고 불편한 것만이 아니다.

서로 얼굴도 알게 되고 몇 층에 알게 되니 말이다. 앞서 내려가는 사람에게 큰소리로 내가 인사를 건넸다.

연세가 칠십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아까보고 또 본다며 이렇게 걸어 다니니까 좋은 점도 있다고 환하게 웃으신다.

엊그제는 계단을 천천히 오르고 있는데 한 여인이 인사를 건네고 내려간다.

어디서 보았는지 영 생각이 나닐 않아 멋쩍은 미소만 보냈다. 아파트에 이사 온 지 십 여 년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누가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관심도 갖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처음 우리가족이 지금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다.

딴에는 사람들과 사귀고 싶어 시댁에서 가져온 야채며 과일을 위층으로 옆집으로 날랐다.

그런데 고맙게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달갑지 않다는 듯 돌아서는 나의 등을 부끄럽게 만든 때도 있었다.

단지 이웃 간에 서로 알고 잘 지내려 했는데도 말이다.

보름 남짓 계단을 오르내렸다. 힘든 때도 있었지만 다리 운동도 되었고, 그동안 몰랐던 이웃도 많이 알게 되었다.

이제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도 끝났다. 새 엘리베이터는 천장이 높아져서인지 훨씬 넓어 보인다. 오르내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걸어 다니려 한다.

그것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도 이웃 간의 정도 모르고 삭막해진 요즘, 며칠간 걸어 오르내리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이웃도 알고, 나 자신에게도 여유로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거린다. 오늘은 어느 층에서 새로운 이웃을 만날까.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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