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옥

갑자기 끼어 들어오는 차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차들 속에서 나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였다.

강자 앞에서 무너지는 약자의 모습을 발견하면서도 결코 운전은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 운전은 도전이기도 하지만 자유를 선사한 선물이기도 하다.

언제였던가. 70세도 훨씬 넘으신 어르신이 장날이면 꼭 할머니와 함께 나오신다.

읍에서 차로 15분 거리. 어르신이 직접 운전을 하신 까닭에 언제든 맘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하신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만큼은 자유를 누리고 있구나, 나도 저럴 수 있을까. 직접 운전을 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나 남들 다 노는 휴일이 더 바쁜 남자와 살다보니 원망만 쌓여 갔다.

내 못난 탓에 아이들마저 아빠에 대한 기대가 자꾸만 작아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남편만 바라보기엔 지치기도 했고 출장이 잦은 핑계로 결국 일을 저지르게 됐다.

차가 생기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됐다.

세상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도로의 흐름을 타다보면 도로와 동화되어 가는 나를 발견하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그 흐름의 방해자인지 아니면 동반자인지 모른다.

지금은 모든 것이 두렵고 설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나름 교통법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이제 길만 안다면 그냥그냥 차를 끌고 다닐 정도는 됐다.

길에 나서는 일이 예전처럼 두렵거나 긴장되지도 않는다.

나는 오늘도 교통법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법과 무질서 사이에서 언제나 갈등을 느끼며 도로를 달린다.

차도 구석구석 멍이 들지 않은 곳이 없다.

후진하다 담에 부딪치고 기둥에 끼이고 다른 차의 문에 찍히고 이런저런 사연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상처는 양반이다.

밤새 안녕이라고 나도 모르게 생긴 상처도 있다.

세상은 그렇게 내 마음과 다르게 달릴 때도 있다. 나도 아직은 온전한 자유를 찾지 못했기에 가끔은 선의라는 이름으로 한 쪽 눈을 질끈 감는다.

도로 위엔 법보다 흐름이 중요할 때도 있으니까.

내일은 어디로 갈까!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나를 본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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