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때 부터 우리 사회가 값비싼 물건이건 값싼 물건이건 가구류나 가전제품 할 것 없이 우리네 일용물품을 무차별적으로 마냥 흥청거리고 소비해 버리는 풍요로운 과소비 시대를 맞게 되었단 말인가!
마음껏 써버리는 것도 좋지만 그 보다도 별로 써보지도 않은 멀쩡한 물건들을 아무런 미련 없이 내다버리는 작금의 현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것인가!
내 물건 내 마음대로 버리는데 무슨 주제넘은 참견이냐고 따지고 대든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아직도 선진국 수준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고 자부하기엔 너무 성급한 면이 없지 않은 우리네 경제 실정으로 볼 때 분명히 분에 넘치는 소비성향을 보이고있으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너무 성급하게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외국의 비아냥을 받고 있는 처지로서 더구나 I.M.F의 호된 홍역속에서 제대로 깨어나지도 못한 우리네의 경제실정으로 볼때 오늘의 과소비 형태는 기필코 반성해보지 않을 수 없는 중대한 현안이 아닐 수 없다.
70년대초 새마을 사업으로 경제부흥에 발벗고 나섰던 때의 소망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풍요로운 사회를 이룩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한결같은 절실한 꿈이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한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년간 국민소득 80달러에도 채 안되는 최빈국에 속해있던 그 당시에 비긴다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모두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있으니 그런대로 의식주의 근본문제는 족히 해결된 셈이다.그러나 우리 사회가 모두들 똑같이 잘 살고 있는 사회는 아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생활환경 속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우리네 과소비 풍조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판이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안는다고 오늘의 풍요속에 사는 세대들은 불과 삼사십년밖에 되지 않는 보리고개 시대의 그 가난 속에 찌들었던 참담한 빈곤의 시대를 마냥 잊어버리고 오로지 오늘의 풍요에만 도취되어 그렇듯 쓸만한 물건도 헌신짝처럼 마구 버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부불검용(富不儉用)이면 빈후회(貧後悔)라는 주자십회(侏子十悔)의 교훈이 결코 낡아빠진 고리타분한 넉두리는 아닌 것이다.
세계경제를 주름잡는 경제대국 일본의 저명한 재벌들도 20여평의 재래식 목조가옥에서 검소하게 지내는 그들의 생활철학도 결코 타산지석일 수는 없다.
우리가 진정한 부를 누릴려면 무작정 물쓰듯 써버리는 과소비 풍조를 씻어버리고 부유한 사람은 헐벗고 배고픈 계층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정으로 가진 것을 인정으로 나누고 쓰다 남은 것은 없는 이들에게 넘겨주고 아직 쓸만한 물건은 버리기에 앞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아껴쓰는 알뜰한 생활습관을 생활화 할때 우리의 경제적 풍요는 참다운 부의 가치를 지닐것이며 다양한 계층간의 융화를 가져옴은 물론 사회적 평등의식과 상부상조하는 사회기풍도 저절로 깃들게 될 것이다.
마구 버리는 풍조! 이대로는 안된다.다시금 이를 반성함은 물론 있을때 아껴쓰는 검약정신이 그 어느때 보다도 절실히 요청되는 일이라 하겠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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