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천 오백년을 뛰어 넘어 한 소녀가 세인들의 앞에 나타났다. 넓적한 얼굴에 팔은 짧았다. 왼쪽 귀에 금동귀고리를 하고 다녔던 그녀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 평소 무릎을 많이 꿇으면서 정강이와 종아리뼈를 혹사시켰고, 앞니를 이용해 무언가를 끊어내는 노동을 했다. 어금니 등 여러 개의 충치가 있어 심한 치통에도 시달렸을 것이다. 빈혈로도 고생을 했다. 하지만 쌀과 고기는 자주 먹을 수 있었다.

2년 전, 창녕 송현동 15호분의 발굴현장에서는 3~5세기 가야 최고 수장급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발견되었다. 고분 안에는 네 구의 순장인골殉葬人骨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고분은 이미 도굴꾼이 다녀간 뒤라 인골도, 유물도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그런데 무덤의 입구 쪽에 한구의 온전한 인골이 금동 귀고리를 한 채 누워있었다.

소녀의 신분은 6세기 가야의 시녀, 과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첨단기술은 과거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내려 했고, 결국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복원시켜 놓았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렇게 신문으로 그녀를 대면하고 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의 지긋이 다문 입술이 마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 느껴졌다.

깊은 밤, 가야의 하늘은 슬픔으로 세상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늙은 왕의 죽음에 온 나라 안은 울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다. 그때, 깊고 깊은 궁궐 어느 시녀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서러운 흐느낌. 섬긴 이에 대한 그리움인지, 자신의 운명을 서러워함인지 모를 울음이 가늘게 새어나오고 있다.

해질 무렵 왕의 침전에서 보았던 선왕들의 무덤들은, 열린 장지문 사이로 햇살과 함께 붉게 빛나고 있었다. 하얗고도 긴 목 위로 흐르던 머리칼을 늙은 왕은 초점도 없는 눈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자신을 바라보던 늙은 왕의 눈길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 어린 시녀는 알고 있다. 어려서 궁에 들어와, 지밀나인이 된 후로는 바깥 출입도 마음대로 못했다. 결국, 맑고 고요한 눈동자를 가진 시녀는 며칠 뒤, 죽은 늙은 왕과 함께 어둡고 컴컴한 땅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가야인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컸다고 한다. 현세의 삶이 죽은 후에도 지속되기 때문에 실생활에 필요한 유품들과 측근 사람들까지 죄다 무덤 속으로 안고 들어갔던 것이다. 가야인들에게 있어 그것은 피지배자들에게 가한 지배자들의 가혹한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 을 쥐고 있던 지배자들에게 의해 행해졌던 풍습인 순장은 그들이 지켜나가야 할 하나의 순명順命으로 여겼을 것이다.

영원에의 집착은 고대나 현대에 있어 우열을 가리기란 쉽지가 않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도 불로장생초를 구하려 했지만 얻지를 못했다. 진시황릉은 그가 영원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 또한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의 더께만을 키우며 살고 있지 않던가. 자신의 앞날은 그 누구도 모른다.

어떤 이는 가야인들의 순장에 대해 비난을 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이편에 선 우리들이 들이대는 잣대는 참견이고 과욕이지 싶다.

마당에 섰다. 겨울은 자연에 순응하는 모든 것을 끌어안고 이렇게 또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다. 젊음을 자랑하던 푸른 잎들이 땅위로 순차도 없이 떨어져 엎어지고 고꾸라진다. 영원이라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낙엽은 바짝 마른 제 몸에 불을 붙이자 스르르 스러져 버리고 있다. 이 겨울에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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