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득순

각종 농자재 값은 올라갔는데 어떻게 경쟁력을 갖출까. 아무리 유기농이다 친환경 농법을 하라고 야단법석이지만 소비자가 이 어려운 시대에 높은 가격을 주고 사먹을까. 배추에 벌래가 있어도 쉽게 집어들까. 하는 의아심도 가져본다.

농산물 값에 비례하여 농민의 숫자도 줄어든다. 언젠가 신문기사에 논에 벼를 심으면 장마철에 간이 저수지 역할도 하고, 생태계 교란도 막고 산소공급과 황금 들녘 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정서를 주고, 여러 가지로 인해서 12조라는 천문학적인 간접적 효과를 준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서히 황금들녘이 제 색깔을 잃고 백색 물결로 넘실댄다.

통계에 보면 1인당 쌀 소비량이 75kg 이라고 한다. 소비량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은 가난한 시절에 비해서 육류 섭취량이 늘고, 1차 산업에 종사하던 인구가 3차 산업에 종사하면서 인스턴트식품이 그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못 먹어서 병이 오고 지금은 잘 먹어서 오는 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밭작물 역시 어느 지역을 다녀 봐도 그 지역 브랜드화로 한 두가지 작물만 심겨져 있다.

내 어릴 적 정서를 주던 밀과 보리. 조. 목화. 수수는 찾아볼 수 없다. 유년시절 가을날, 수숫대에 단물을 먹으려고 입술까지 베었다.

붉은 수수가 익어가는 밭, 이랑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 내음에 나의 상상력과 감성도 붉은 수수의 키만큼 커갔다. 지금은 비록 배불리 먹고 산다고 자부하지만 행복지수는 반비례 되는 추세 같다.

계속 뛰어야만 간신히 사는 세상일이 어디 농업뿐이겠는가. 대기업과 공생하는 중소기업, 이 모든 것 들이 연결 고리로 되어있다.

도미노 게임을 볼 때면 신기하고 정교함에 감탄한다. 작은 카드 하나가 쓰러지면서 또 하나를 쓰러트리고 연달아 쓰러지면서 글자나 그림을 연출한다. 하지만 한 작물의 쓰러짐과 논과 밭에 당연히 주인처럼 자랄, 작물이 아닌 타 작물이 자란다는 것은 농촌을 무너트리는 무언의 예고 같아 한걱정이다.

11월이면 연례행사처럼 전국의 농민이 여의도에서 아스팔트 농사를 짖는다. 이젠 아스팔트농사도 시덥 찮은지 ‘선거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고 외친다.

‘쌀값은 농민의 자존심’ 이라고 깃발을 내세우고 ‘농자 천하지 대본’이란 깃발이 무색해 보인다.

토론회를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하천 둑에 옥수수를 타고 올라갔던 각시동부 콩이 바짝 말랐다.

그 이삭을 따고 줍는 꼬부랑 노인이 눈에 띄었다. 쌀값은 추락하고 있는데 이삭 줍는 노인의 모습이 부질없어 보인다. 낟알 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노인은 콩을 주으며 흘러간 세월의 이삭도 함께 줍고 있었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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