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진 태(편집위원·소설가)

유심히 바라보지 않더라도 아스라히 솟은 가섭산 봉우리 위로 빗겨 흐르는 한여름의 끝이 초가을 햇살 속에 녹아 내린다.
올 여름은 여느 해와 달리 몹시도 무덥고 뜨거워 야열대 현상의 밤도 여러 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기성을 부리며 작렬하던 햇살도 한풀 꺾여 아침, 저녁으론 제법 서늘한 느낌이 든다.
백중(伯仲) 날을 며칠 앞둔 요즈음엔 밝은 달빛 아래 어디서 그렇게 울어대는지 가을 전령(傳令)들의 영추송(迎秋頌)에 귀가 따갑다.
그런데 다가오는 풍성한 가을을 위한 영추송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어려운 경제난 속에 공산품 값은 뛰고, 진작 올라야할 농민들의 피땀 흘려 지은 농산품 값은 땅바닥에서 기고 있으니 들리는 게 농민들의 한숨 소리다.
그 뿐인가 내년부터는 쌀증산 억제 정책까지 쓰겠다니 이 무슨 날벼락인고.그러니 서민은 한숨 짓고, 농민의 통곡 소리는 하늘에 닿을 수밖에··
이 같이 세상이 온통 어려운 경제난으로 서민들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정부의 관료도, 정치하는 정치인도 국민의 대다수인 서민들의 생활 문제에는 아예 아랑곳함이 없어 보인다.
당장 코앞에 떨어진 발등의 불은 끌 생각 않고 3ㅇ년? 후에나 올 통일 문제부터 걱정한 나머지 통일부장관을 갈아야 한다, 안한다로 다투다가 정부 여당은 밥 얻으려다 쪽박까지 깬 꼴이 되고 말았다.
결코 국민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읽지 못한데서 얻어진 결과이다.
요즈음의 국민들의 마음은 통일도 좋고, 월드컵도 좋고, 선진국 진입도 좋지만 그 보다 더 급한 것은 그들의 최저생활 보장이다.
더군다나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확수 고대하는 사람도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온다하여도 이념적 갈등을 떠나 일반 서민들의 관심은 어려운 살림에 그들을 접대할 경비에 관심과 걱정이 더 많다.
IMF 빚을 청산했다고 정부 여당은 축배를 들었지만 IMF시대보다 몇 배나 더한 경제난 속에 서민고통은 심화돼 가고 있는 현실을 정말 그들은 몰라서일까?
예로부터 ‘군왕은 백성을 하늘 같이 생각하고, 백성은 군왕을 부모 같이 섬겨야 한다’ 고 했다. 그러함에도 요즈음 세상은 어떤가?
참다운 목민관은 안 보이고 상층 관료에서 미관 말직에 이르기까지 한 자리 차지만 하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보인다.
어떻게 하면 권력, 금력을 한 손에 움켜쥐고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그 동안 굶주려온 부귀. 영화나 오래도록 누려 볼까하는 욕심 채우기에 영일 이없는 것처럼 백성들의 눈에 비취기까지도 한다.
원래 인간이란 누구나 할 것 없이 본능적인 욕망이 있기 마련인지라 높은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에 대한 책무보다는 권세에 눈이 어두워지고, 그 권세를 이용한 치부에 연연하기 마련인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그러나 낙화되지 않을 꽃이 어디 있으며, 머무르기만 하는 봄(春)이 어디 있으랴. 시간은 흐르고 영고(榮枯)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잡았던 금, 권의 시대는 남가일몽(南家一夢)이거나, 일장춘몽처럼 지나가 버리는 것이 인간 세상의 상례이다.
참으로 오늘의 나라 형편은 말이 아니다. 수출은 줄고 국내외 경기는 늪의 수령에 빠져들고 있다.
개혁을 한다고 말로만 요란하게 떠들어댔지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진 게 없다. 개혁이 아니라 개악만이 산더미처럼 쌓여져 가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구조조정이다 하면서 실업자만 양산해 내었고, 보다 우선이어야 할 실업자에 대한 대책은 눈 닦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문민정부라 불려졌던 시절은 자고 나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줄을 이어 보도되곤 했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셋만 모이면 그 시대의 대통령을 사고처리 대통령이라 쑤군거렸다 그렇지만 그 많은 사건과 사고들은 그 이전의 정권 하에서 저지러진 누적된 부정부패 의한 것이었기에 일말의 동정은 갔다.
그러나 오늘날 국민의 정부 하에서 저지려지고 있는 각종 부정 부패 비리는 순전히 현정권의 집권 중에 저질러지고 있어 국민의 실망은 더욱 큰 것이다.
위로는 청와대에서 아래론 미관 말직에 이르기까지 부정과 부패와 비리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 신문 지면을 누비고 있으니 어찌 국민은 좌절과 허탈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풍요를 누려야 할 결실의 가을은 다가와 벌써 풀벌레들의 영추송은 귀따갑게 들리건만 정영 이 땅의 백성들은 영추송을 외면해야만 하는가.
취임당시<준비된 대통령>으로 자부했던 김대중대통령은 <준비 안된 대통령>이란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임기가 끝나기 전에 그 준비했던 모든 것을 국민에게 보여 주어 국민의 주름진 이맛살을 펴 주고, 실의와 좌절에서 희망과 꿈을 키워 갈 수 있는 국민이 되게 큰 정치를 해 주기를 소원하며 푸념 섞인 上疏 한 장 써 본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