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안

정면 벽에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노부모가 앞자리 중간에 앉고 오남매 아들딸 내외와 그 손자들까지 올망졸망 다복한 모습이다. 나의 시선은 뒷줄 오른쪽에 나란히 서 있는 친구부부의 모습에 머문다.

“이렇듯 다복하시니 얼마나 좋으세요?”

“모두들 뭐가 그리 바쁜지… 얼굴보기 힘들어요.”

친구 시아버님의 쓸쓸한 말투에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나는 하필이면 교육 이야기를 꺼내고 만다.

“자식들 교육 시키느라 더 시간 내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교육이요? 그거 다 부질없는 짓인데…”

순간 부모의 교육열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절감한 분에게 괜한 말을 했구나 싶어 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어진다.

친구는 오랫동안 혼자 살다 부모형제도 없이 외롭게 살고 있는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잘못되자 두 사람은 시골로 들어가 허름한 집을 구해 생활했다.

5년 전 겨울 어느 날, 두 사람은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남편은 지게 가득 땔감을 졌고, 아내는 굵직한 나뭇가지 하나를 끌며 왔다. 집 가까이에 오자 방문객이 서성이고 있었다. 가난한 아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편이 회사 다닐 때 무슨 빚진 것이 있어 그게 탈이 난 모양인가보다 하고 생각한 것이다.

저만치 가서 방문객을 만나고 온 남편이 아내에게 오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사연인즉 아버지와 동생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혼자인 줄 알았던 남편에게 가족이 있다니….

친구의 시아버님은 교육열이 높았다. 친구의 남편은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늘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고는 했다. 반대로 그 동생은 늘 아버지를 흡족하게 해 드렸다.

형의 나이 스물여섯 되던 해였다. 사소한 일로 아버지에게 몹시 꾸중을 들은 형은 집을 나오고 말았다. 아버지는 언젠가 만날 아들을 위해 15년 세월동안 통장을 메워가고 있었다.

한편, 고용보험금을 수령해가라는 공문을 보내야하는 고용지원센터에서는 시골에 묻혀 사는 두 사람을 찾을 길이 없었다. 할 수없이 그 본적으로 연락을 했고 아들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아버지는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렇게 해서 부자지간이 상봉한 것이다.

“살아서 너를 만나다니,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들며느리의 큰절을 받은 아버지의 말이었다고 한다.

공부가 행복을 좌우하지 않는 것임을 이 분인들 왜 몰랐겠는가. 부모의 지나친 교육열이 사회 문제가 된지는 이미 오래다. 그러나 이것을 부모만의 문제라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진 것이 없으면 배운 것이라도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는 사회풍토가 이 땅의 부모들을 지나친 교육열에 매달리도록 하지 않았을까.

사회가 다변화 되면서 가족이 흩어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공부나 일 때문에 잠시 헤어지기도 하고 드물게는 뜻이 안 맞아 아주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족사진을 응시하며 안도의 빛이 역력한 아버지, 허망한 것들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말라는 무언의 말을 우리에게 하는 듯하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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