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득순

내 몸이 부실하여 단골처럼 찾아가는 읍내 한방의원에 들렀다. 접수를 해놓고 기다리는데 5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여인이 치료를 마치고 원무 일을 하는 젊은 여자에게 진찰비를 지불하고 나가면서 “언니 수고해요” 한다. 순간, 나는 깜깍 놀랐다. 두 여자를 얼핏 보아도 첫째 딸 같은 나이 차이가 되어 보인다.

50대쯤 되는 여인이 나가고 나서 원무 일을 보는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나가신 환자분 나이 좀 들어 보이는데 ”언니라뇨” 하고 물어보니, 원무를 보는 여자가 “글쎄 저도 듣기가 민망해요”한다. 나도 역시 듣기가 거북한데 원무일과 간호사 역할 을 하는 분은 얼마나 난처할까. 하지만 요즘 흔치않은 말이라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언니, 언니라는 호칭은 여자들끼리의 자신보다 나이가 위인 사람에게 정답게 부르는 호칭이다. 내가 여기에 덧붙인다면 언니란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 상대의 성품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사이여야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병원에 가보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환자를 돌보고 안내하는 간호사가 “어머님. 아버님”하며 친절하게 대하며 정겹게 말하는데 듣기 좋은 언어이다. 독거노인들에게는 얼마나 위안이 되고 정겨운 말일까. 하지만 간호사가 간호사복 을 벗고 거리를 다닐 때도 똑같이 어머님. 아버님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올까 의문스럽다.

요즘 외식문화가 많아지면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있다. 나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식당에서 일하는 일명 식당 써빙 여자에게 여자 손님들은 “언니 여기 반찬 좀 더 주세요”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서 일하는 아줌마 에게 물어봤다. 요즘은 아줌마라고 하면 듣기 싫어한다고 얘기를 한다. 언제부터 호칭의 문화가 바뀌었나...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글 같이 다양한 단어도 세계에서 찾아 볼 수가 없지 싶다. 예를 들면 노랑색을 비유 할 때도 채도에 따라서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노르끼리 하다. 등등... 또한 죽음을 비유하는 단어도 사람의 직위와 직업 죽음의 과정에 따라서 표현도 여러 가지다. 손가락을 꼽아 대충 세어 봐도 열다섯 개가 넘을 듯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문학이 출중해도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외국의 단어가 단순해서 번역에 어려움이 있지 싶다. 며칠 전에 끝난 TV드라마 ‘추노’에서도 ‘언니’ 라는 말을 천지호 가 자주 사용했다. 진짜로 그 시절에도 그렇게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연출자가 코믹하게 하기 위해서 한 것 일께다. 요즘 젊은이들이 신종어를 많이 만들어낸다. 그 예가 ‘짱’이다. 짱 앞에 얼굴의 얼짜를 붙이면 ‘얼짱’ 이 되고 몸을 붙이면 ‘몸짱 이 되듯, 요즘 웬만한 나이가 든 사람들은 쉽게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정녕 아줌마 소리가 싫다면 ‘언니’대신 더 좋은 말의 신종어를 신세대 들 에게 개인적으로 부탁 하고 싶다. 순수한 우리말들, 아가씨에서 새댁. 아기엄마. 그리고 아줌마. 얼마나 당연하고 듣기 좋은 말일까.

외식을 하던 식당에서 일들을 다시 되뇌어본다. 모든 이에게 상대방이 원하고 가장 듣기 좋은 대로 불러줘야 한다. 하지만 오늘 들은 ‘언니’ 소리는 내 귀에 거슬린다. 정말로 모든 이들이 ‘아줌마’소리가 싫다면 다양하고 좋은 우리말에서 들어서 좋고 편안하게 부를 수 있는, 대신할 수 있는 상용어는 없을까? 혼자서 고민하고 생각하다 잠이 든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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