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안

하던 일을 멈추고 땅에 삽을 꽂은 다음 잠시 허리를 편다. 시선을 먼 곳에 두고 제자리에 서서 한 바퀴 돌아본다. 빈약한 내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가섭산, 그 큰 품의 자락마다 흘러내린 주름, 그 주름 주름마다에는 온통 복사꽃이 한창이다. 벚꽃철이면 인파가 출렁이는 명소와는 달리 이곳은 한가하기 그지없다.

푸른 하늘 아래 따스한 햇살 사이로 농부들의 모습만 간간히 보일 뿐이다. 봄비를 머금은 땅이 잠자던 복숭아나무를 흔들어 깨우면 농부는 잠에서 깨어나는 나무를 돌보는 것이다. 복사꽃 천지에서 일하는 농부. 그 모습도 풍경의 한 부분이어서 분주한 일손마저도 고즈넉하게 보인다. 어쩌면 무릉도원의 풍경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풍경의 일부분이 된 나도 삽을 들고 일을 계속한다. 가을에 잘라서 땅에 묻어두었던 포도나무 가지를 꺼낸다. 눈이 봉긋하게 부풀었다. 화분을 반쯤 땅에 묻고 두세 마디씩 잘라서 꽂는다. 이제부터 이 앙상한 가지와 나는 땅과 한 마음이 된다. 나는 정성을 쏟고 가지는 생명을 이어가기위해 혼신을 다해야 한다. 그 사이 땅은 메마른 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바람과 햇살, 비를 맞으며 계절이 바뀌는 동안 땅은 뿌리를 내리게 하고 싹을 키우는 것이다.

앙상한 가지를 한 그루의 포도나무로 탈바꿈 시키는 땅의 생명력에서 무한한 신비를 느낀다. 포도나무 가지를 땅에 꽂으면 포도나무가 되고, 옥수수 한 알을 심으면 탱글탱글 알이 씹히는 옥수수를 몇 자루 먹을 수 있다. 한 알의 콩을 심으면 수십 배의 콩이 열리고, 참깨 한 알에는 콩보다 훨씬 더 많은 참깨알이 열린다.

농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면 땅은 스스로 갖가지의 풀과 나무를 키운다. 지하세계는 작은 곤충들의 터전으로 내어주며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미생물까지 키우고 있다. 땅은 사계절 내내 끝도 없이 생명을 피워 올리건만 나는 왜 봄이면 새삼스레 그것을 느끼는지…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이 포도나무 화분도 실은 내가 아니라 땅이 만든다고 해야 옳은 말이지 싶다. 땅이, 바람이, 햇살이 없다면 내가 무슨 수로 앙상한 가지에서 순을 자라게 하고 뿌리를 내리게 하겠는가. 문득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밟고 사는 도시인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가을이 오면 포도나무 화분은 고객들 가정으로 분양될 예정이다. 화분 포도나무를 통해 나의 고객들도 흙이 지닌 가없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묵묵히 제 할일 하는 땅, 그 땅에서 세월을 보내는 농부는 땅의 마음을 가장 잘 읽는 사람들. 어떤 이는 농부를 하찮은 직업으로 여기기도 하겠지만, 나는 땅이 하는 일을 도와주는 보조자. 행복한 보조자.

<가섭산의 바람소리>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