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얼마 전 우리 집 애견 방울이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모두 죽고 말았다. 그 이유가 나 때문인 것 같아 가슴이 너무 무겁다. 방울이가 새끼를 낳은 다음 날에 우리 부부는 이틀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아이들에게 밥은 어떻게 주는지, 그리고 절대 집을 들여다보면 안 된다는 것도 일러주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밥을 주려 들여다 보니 한 마리가 어미와 떨어져 있다. 몸에 손을 대어 보았다. 얼음장 같은 몸이 뻣뻣했다. 할 수 없이 화단에 작은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강아지들의 생명은 길지 않았다. 어제였다. 죽은 강아지를 묻어주려고 끌어낸 순간 나는 그만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다.

강아지의 내장이 비어있는 것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엇이 그랬을까. 그때였다. 방울이가 집에서 나오더니 내장도 없는 작은 몸을 핥는다. 그러고 보니 범인은 바로 어미인 방울이였다. 죽은 줄도 모르고 흐느적거리는 연한 뱃가죽을 핥았으니 몸이 온전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아직도 새끼가 죽은지를 모르는 것일까.

일어날 리 만무하건만 정성을 다해 핥는다. 급기야 새끼를 다시 입에 물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품어 안고 있다.

어미였다. 나를 바라보는 두 눈엔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물이 가득 담겨있다. 내게 무언가를 묻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일까. 기다려 달라는 듯 했다. 애절한 그 눈빛에 나는 그만 자리를 뜨고 말았다.

얼마 전 우리 지역과 이웃하고 있는 곳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에서 반경 3㎞ 안쪽은 모두 위험지역으로 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등과 같이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들은 살처분이 된다. 비록 짐승이지만 자식처럼 키웠을 것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얼마 전 한 여성 농민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유난이 큰 눈을 가진 소들의 그 눈빛을 잊지 못했을까. 세상구경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농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던 그 모습이 아른거려 차마 눈길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털이 보송보송한 송아지가 구덩이에서 버둥거렸을 터였다.

순간 농부는 구덩이 속에서 버둥거리는 그 모습이 자신이라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인정도 눈물도 없는 육중한 포크레인의 기계소리는 장송곡인양 들렸으리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그 밤이 농부에겐 이승에서 가장 길고 긴 생의 마지막 밤이 되고 말았다.

농민들에게 있어 가축은 가족과도 같은 존재이다. 주인의 발소리에 귀를 쫑긋거리고, 밥을 달라 소리를 지른다. 자식들이 타지에 나가 집이 텅 빈 것 같다가도 송아지가 뛰어 다니면 자식을 보는 듯 마음이 흡족하고 위안이 되었다. 가축은 그렇게 농민들에게는 위안이고 즐거움이었다.

오늘 방울이의 눈을 보는 순간 짐승이지만 어미의 눈은 사람이건 짐승이건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찮은 동물이라고 그 슬픔이 작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아침은 일찍 미역국을 끓였다. 특별히 날계란도 풀어 넣었다. 집에서 멀찌감치 떨어지게 어미에게 밥을 주고는 새끼를 끌어내 화단에 묻어주었다.

눈치를 챈 것일까. 그리 잘 먹던 미역국을 오늘은 먹지도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종일 섧게 짖어대기만 한다. 새끼를 찾는 모양이었다.

자식을 잃은 어미 방울이에게 오늘 밤은 무척이나 길 것이다. 달이라도 휘영청 밝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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