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토종 음식 맛이 그립듯이 옛 길이 그립고 궁금할 때가 있다. 오늘 같이 마음이 여유롭거나, 허전한 생각이 들 때면 구불구불한 옛길이 좋아서 이따금 한번씩 찾는다. 지나온 삶이 묻어 있고 추억이 어려있는 곳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자주 찾게 되는 것은 훌쩍 지나버린 세월의 아쉬움과 그리운 마음이겠지 싶다. 오늘도 박달재 꼭대기의 장승 옆에 나 또한 장승이 되어 먼산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내 나이가 정상에 오른 듯 하다. 오르는 길만이 힘겹구나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내려 가야 하는 일이 더 걱정이다. 멀리 발 아래로 보이는 길은 많은데 어떤 길을 찾아서 가야 하는 걸까. 삭정이라도 꺾어 의지하면 좀 나을까 싶기도 하다.

길은 수없이 많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대문을 열고 한 발작만 나서면 발끝 닫는 곳이 모두가 길이다. 좁은 골목길을 터덜거리다 보면 신작로로 이어지고 산업도로를 거쳐 가슴이 시원스러운 고속도로로 이어진다. 항로가 있고 해로도 있다.

산업사회로 접어 들면서 신속한 물동량 수송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 하여 중요한 기간 산업으로 자리 매김 될 만큼 길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사통팔달 대동맥 같이 굵직굵직한 고속도로가 생기더니, 그 못지않은 산업도로가 건설되었다. 이제는 시골 구석구석의 농로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길은 잘 다듬어 지고 포장까지 되어 있어 깔끔하고 편리하다.

길이란, 신체의 핏줄 같아서 이리 갈리고 저리 나뉘어져 있다. 늘 상 다녀보아 번히 아는 길이라도 때에 따라서는 어느 길을 선택해서 가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더구나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길을 찾아 가기란 막막하기만 하다. 길눈이 어두워 몇 번씩이나 오고 간길 조차도 헷갈리기 일수고 네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에도 종종 헤매는 경우가 있다. 이렇듯 길이 좋아진 만큼 갈림길도 많아지고 새로 생기는 길도 많아지니 길 찾기란 더욱 복잡하기만 하다.

그 중에도 가장 찾기가 어렵고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싶다.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수많은 갈림길들이 있다. 그 중에 한쪽 길을 선택하여 갈수 밖에 없으니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갈등이고 도전이 아닌가 싶다.

내가 가야 하는 길이야 설령 선택을 잘 못하여 거칠고 험한 길일지라도 내자신이 감내하고 생채기 받으면 되겠지만 자식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인도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듯하다. 행여 그 길을 잘 못 찾아 들어 자식들이 가시밭길이라도 걷게 된다면 아비의 아픈 마음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겁이 나기도 하다.

자식들이 다 자란 이제는 아예 안내 해줄 만큼 더 잘 아는 길도 없어졌다. 다녀 보지 않고 겪어보지 않은 인생 길이 너무 많아 뒷전에서 가슴만 태울 뿐이다. 알 수 없는 길을 무작정 가보라고 떠 밀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 나이 벌써 내려가는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 볼 때가 되었다. 인생의 고갯마루에 서서 되돌아 보니, 보통사람의 지식이나 판단으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며 사는 길이 사람 사는 길의 으뜸이 아니겠는가 싶다.

넓게 포장되고 곧은 길만이 능사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굽이굽이 넘는 고갯길에서 돌아갈 줄 아는 삶의 여유로움을 배웠으면 좋겠고, 포장되지 않은 오솔길에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 갈 줄 아는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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