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옥

육년전 우리가족 앞에 닥친 현실은 너무도 암담했다. 그때 남편이나 내심정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 같은 느낌으로 참담했다. 아마도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 그랬을 것이다.

좀 더 잘살아보고자 시작했던 라면 대리점과 생수대리점, 부족한 자본으로 시작한 대리점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월말이면 대금결제를 해야 하는데 미수금으로 깔린 대금들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미수금만큼 자금을 융통하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조금만 버티고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생각만큼 매출은 오르지 않았고 미수금으로 누적되는 적자는 계속해서 빚만 늘려갈 뿐이었다.

그때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 같은 건물에 세 들어 있는 치킨 점이었다.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가게를 임대해준 것이다. 그것도 보증금 한 푼 받지 않고 다달이 벌어 임대료를 갚는 조건으로 생면부지인 우리부부에게 가게를 선뜻 맡긴 것이다.

노하우도 자본도 한 푼 없는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양심과 성실이었다. 통닭을 팔면서 우리는 두 아이를 걸었다. 언제나 내 아이에게 먹여도 거리낌 없는 치킨을 만들어 배달하겠다고 공약을 했다.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먹일 음식을 함부로 하겠는가. 닭을 튀겨 맛을 내는데는 깨끗한 기름이 필요조건이라는 걸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도 지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양심과 성실을 무기로 가게를 운영하니 고객이탈이 적고 단골이 늘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지난 육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치킨 점을 운영했다

그동안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빚을 갚아야 된다는 의지였다. 또 잘 살아보려는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몸살이 나서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어도, 배달사고로 남편이 다쳐 병원에 입원을 했어도, 또 내가 팔이 부러져 기브스를 하고도 영업을 했다.

그런 우리부부를 보고 주변에서는 지독하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우리라고 왜 아플 때는 쉬고 싶지 않았겠는가.

매번 명절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어 가슴앓이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닥친 현실에서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려면 열심히 사는 거 말고는 방법이 달리 없었다.

무엇보다 고객이 먹고 싶을 때 배달을 못해주는 것도 지금까지 우리치킨을 시켜준 고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배달을 해주는 통닭집, 그게 우리 치킨 점이었다. 그렇게 육년을 하루같이 살다보니 빚도 청산하고 가게도 사게 되었다.

내 명의로 된 사업자등록증을 교부받던 날, 그날의 심정은 통닭이라도 되어 하늘을 날아다닐 것만 같았다.

그동안 우리가족은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침몰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거친바다를 항해하는 좌초위기의 선박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무사히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끊임없는 노력과 성실 때문이었다.

인간은 실패를 마주하면 처음에는 누구나 좌절을 하기마련이다.

좌절 속에 삶을 포기하는 순간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냉혹한 현실이기도 하다.

스스로 포기한 사람에게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실패를 하기도 하고 성공을 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스스로의 몫인 것이다.

우리부부의 험난했던 지난날도 남의 탓이 아니고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러나 이제는 어려움을 딛고 희망가를 부른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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