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옥

친구에게 받아 모아놓은 오래된 편지 첩을 펼쳤습니다. 편지를 읽다보니 그 친구가 몹시 그리워 친구란 낱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친구: 오래두고 정답게 사귀어온 벗)

사람은 누구나 가까운 벗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이가 같은 또래친구, 어린 시절을 뛰어놀며 함께 자란 코흘리개 친구,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 굳이 동갑이 아니어도 진심으로 마음만 주고받을 수 있다면 누구이든 서로에게 좋은 벗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마음이 통하는 좋은 친구는 누구일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나의 반쪽을 떠올립니다.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서 하나를 이루어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살라고 사람인(人)자 인 한자(漢子)가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남편은 가끔 “당신은 나의 마누라이기도 하지만 가장 가깝고 소중한 친구이기도해”라며 너스레를 부리곤 합니다. 물론 나에게도 남편은 가장 든든한 백그라운드이고 소중한 벗입니다. 남들은 남편이, 아내가 무슨 친구냐고 하겠지만 나의 좁은 소견은 다릅니다.

소중한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안 살 것처럼 으르렁거리기도 하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들여가며 살아가는 게 부부인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서로 마주보며 눈빛 몸짓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보다 소중한 벗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물론 남편 말고도 좋은 벗들이 있습니다. 많지는 않아도 숫자가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허물없이 마음을 터놓고 이해해주고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으면 소중한 벗입니다. 굳이 ‘너는 나의 진정한 벗이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진실하다면 언젠가는 지란지교(芝蘭之交)를 이룰 것입니다.

예전에는 우정이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보물인 듯 억지로라도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서로를 지켜야 되는 것이 우정의 깊이인줄 알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또 일 년 삼 백 육십오일 날마다 편지를 쓰고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친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참된 우정의 도리인줄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여러 친구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잦아지면서 내가 행했던 행동과 마음은 눈에 보이는 허상과 집착임을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벗은 집착하지 않아도, 참된 우정을 주장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속에 은은한 향기로움을 품어 내며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가슴을 열면 좋은 벗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이 저물기 전에 예전처럼 라디오를 들으며 친구가 그립고 보고 싶다는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또박 또박.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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