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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가듯이 <中秋佳節을 맞으며>조 진 태<소설가:본사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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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9.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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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짙은 창변에 낙엽이 뚝뚝 듣고, 별이 빛나는 밤의 영창에 들리는 영추송(迎秋頌) 속에서 나는 영락 없이 세월과 인생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씨앗 뿌리던 봄과, 번거롭기만 하던 여름에서 세월감을 잊고 살았다면, 역시 거두는 가을이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돌아보며 자기를 생각할 수 있는 사색의 계절이기 때문일 게다.
왜, 어떻게, 이쯤까지 온 나의 인생인지 모를 일이지만, 확실히 세월과 삶이 소리없이 나를여기까지 이끌어 왔고 또 이끌어갈 것이다.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달려온 인생이요, 가는 나그네이겠거니, 새삼 이 가을의 창변에서 세월과 인생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해도 조락(凋落)의 서글픔을 느끼기엔 아직 멀었다. 그러나 그 가을마다 다르게 느껴 보는 세월과 삶은 지나온 수 많은 날들 때문에 더욱
감회 깊고 민감해 짐을 어쩔 수 없다.
그런 것을 입증 할 수 있는 데는 두 가지를 들 수 있겠거니와 그 하나가 내 앞을 거쳐간 제자중 동직에서 나란히 ‘선생님’이 되었다는 사실이요, 또 다른 하나는 코흘게 꼬마 녀석
들이 장가가고 시집가는 현상을 목격하는 데서 더욱 이 같은 소리를 들을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낙엽 듣는 가을만을 골라서...
“아니? 선생님... 제가 아무개입니다.” “...? 옳거니, 그래 자네가?”
그래서 만난 사제는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조차 모르면서 주석(酒席)에 앉게 되는 수도 허다 했거나와, ‘선생님’ 소리에 무심히 고개 돌리면 생소한 귀부인이 ‘영희에요’ 라는 데는
너무나 어리둥절 할 수 밖에. 곱게 빗긴 단발머리의 그 영희가 어느새 애기 엄마가 되었더람.“선생님, 주례 좀 서 주십시오!”
이쯤 되면 어느덧 중년 노인 취급을 당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에 신랑신부는.
..”에서 시작해 “부부화목하고 알뜰살뜰...” 운운으로 주례사를 불사해 마지 않았으니 어
찌 세월과 젊음의 아쉬움을 탓하지 않을 수 있으며 지난 연륜을 헤아려 보지 않을 수 있으랴.
돌아보면 그 하많은 세월이 나를 못박고 징박아 오늘에 이르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해서 멀리도 구름 밖 은하에 별이 뜨고, 초가 지붕마다 여물박 누운 그 가을은 해마다 오고 가노니
젊음도 흐르고 세월도 흐름은 당연하리라.
그래서 나는 차라리, 차라리, 세월가는 소리 속에 아름다운 추억, 그 젊음을 잊지 않으마 다
짐하며 청마 선생이 노래한 ‘바위’를 간혹 읊어보는 것이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
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 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
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이 같이 노래했던 청마 선생도 고작 인생 60을 못 살고 갔지만, 문학과 교직 일생에 ‘청
마’로 살았고, 바위처럼 살기를 원했으니, 유한의 인생보다 영원의 삶을 택해 떠났기로, 그
지고(至高)의 정신을 이 범인이 어찌 헤아릴 수야 있을까만, 아무래도 낙엽의 의미나 바위의
정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한 없이 가깝게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진저, 그것은
오직 뚝뚝 듣는 가을의 낙엽 소리 속에서 차분히 귀기울임만으로도 가능한 것이다.
<가을 바람 불어 올제/ 쓸쓸해 혼자 시를 읊어/ 넓은 세상 내 마음 아는 이 드물고/ 창 밖
은 삼경이라 바는 내리고/ 등불은 가물가물 만리 밖에 이 마음 흘러> 의 ‘秋夜雨中’ 이
란 시를 쓴 신라의 최치원도 가을밤 빗소리에 난세를 희롱해 보았음도 역시 미루어 가을이
요, 그 가을과 함께 세월가는 소리 속에 젊음을 느꼈겠거니 내 또한 인생을 절감치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생은 젊음을 붙잡을 수도 있겠거니, 거기엔 세
월도 머물고 인생도 머물리라.
십오야 둥근 달에 시선을 매달면 게수나무 밑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동화 같은 이
야기가 생각나는, 그야말로 팔월 대보름인 한가위는 또 한 번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중추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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