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아침에 샤워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린다. “안녕하시오? 추석명절 잘 보내셨드래요? 나 중국 황씨인데 10월말에 중국으로 들어가요”

황씨 아저씨는 몇 년 전 지인의 사무실에 갔다가 알게 된 분이다. 그때 그 분은 허름한 옷차림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오셨는데 서류가 미흡하였다. 사무실 여직원은 외국인등록소에 가서 서류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자 아저씨는 사무실 여직원에게 함께 가 달라고 떼 아닌 떼를 쓰고 있었다. 곁에서 보던 난 스케줄을 미루고 하루 동행을 해드리기로 결심했다.

“아저씨 저도 오늘 바쁘긴 한데 제가 동행해 드릴게요.” “정말이라요? 그럼 차비는 모두 제가 대겠습니다.”

아저씨와 단둘이서 청주로 향했다. 청주 가는 길에 아저씨는 연변에서 왔으며 중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왔다고 하셨다. 돈은 버는 대로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단다. 중국에 퇴직 후엔 일자리가 없어서 한국엘 왔는데 한국에도 일자리는 마땅치 않다며 먹고 자면서 일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이 청주에 도착했다.

출입국 사무소에 가서 아저씨를 뒤에 모셔놓고, 이리 저리 물어 업무를 봐 드렸다. 아무래도 아저씨보다는 내가 업무를 봐 드리는 것이 빠르다 싶었기 때문이다.

업무를 다 마치고 도착을 해서 기름 값이라며 오만 원을 꺼내 주시려고 하셨다. 난 아저씨가 돈을 주시면 오늘 좋은 일 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고 하고 넣어두시라고 했다.

“그러면 내가 미안해 서리 안 되는 거라요. 너무 적어서 그러십네까?”

“아니요. 전 오늘 아저씨를 도와 드렸다는 생각에 뿌듯해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돈으로 계산을 하시려 하면 제가 맘이 상하죠. 그냥 넣어 뒀다가 맛난 거 사 잡수세요.

“나를 파렴치한 사람으로 만들지 마시라요. 받아야 합네다” 받아라 마라 한참을 실랑이를 벌리다가 “기름이 만원어치 정도 들어갔으니 만원만 주세요.” 하고 만원을 받았다. 그래야만 실랑이가 끝나고 아저씨가 편한 맘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실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아저씨는 중국에 갔다 올 때면 항상 전화를 주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생활을 접고 중국에 아예 들어가신다고 한다.

“중국에 같이 들어갑시다. 내가 백두산과 북경을 안내를 해드리고, 무상으로 구경을 시켜 드릴 테니 꼭 같이 갑시다. 내가 한국에 오래 있어도 아주머니처럼 친절하게 해준 사람은 보질 못했습네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네다” 하시며 함께 가자고 하신다.

그저 중국에서와 낯선 곳을 찾아다닐 엄두가 나질 않는 듯 하여 시간을 할애 했을 뿐인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기억해주니 참으로 쑥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였다. 아쉬운 것은 한국에 와 있는 동안 따뜻한 동포애를 많이 느끼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나의 작은 호의가 가장 큰 친절이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난 사람의 인연을 참 소중하게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실로 대할 때 인연이 오래가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나를 만난 것이 행복이라고 느끼게 하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눌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영업을 하는 나는 누군가가 걸어간다고 하거나, 버스를 타고 갈 상황인 것을 보면 언제나 나의 시간을 그에게 주고 싶어진다.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자동차로 하는 봉사는 내가 최고라고 하겠다.

아저씨와의 통화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봉사꾼으로 거듭나자는 다짐을 하게 되는 아침이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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