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새벽 다섯 시! 어김없이 오늘을 시작하라는 알람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알려온다. 눈을 감은채로 핸드폰을 더듬더듬 찾아 알람을 종료시킨 후 멀뚱멀뚱 천정을 향해 눈 운동을 해본다.

오늘 스케즐이 어떻게 되더라? 내가 오늘 아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뭐였지? 오늘 아침메뉴로 미역국을 끓여야 할까? 말까? 생각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불을 켠다.

오늘은 아들의 생일이다. 기숙사에 가고 없는 아들의 생일 국을 끓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미역국 대신에 아들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기로 하고 핸드폰을 열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큰 기쁨을 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성년의 생일을 맞는 구나. 아들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엄청 힘이 들었겠지만, 아들을 낳기 위해 엄마도 하루이상을 고통과 싸우며 보냈다는 것을 알아주렴. 암튼 아들은 이제까지 엄마가 받은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임에는 틀림없다.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참 고맙구나. 아들 없는 데 미역국을 끓이면 서글플 것 같아서 오늘 아침국은 된장국으로 하련다. 아들 오늘 최고로 멋진 날을 보내라고 엄마가 통장에 용돈 보내줄게. 친구들과 즐겁게 보내렴.’ 아들에게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은 참 간단했다. ‘어므이 고마워요. 사랑해요♥♥♥.

얼마 전 아들은 토요일에 집에 오면서 큰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상자 속에는 11월11일에 주고받는다는 길쭉한 과자와 미니빵이 들어있다. 원래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지만 아들이 챙겨주는 선물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속에는 과자뿐이 아니라 예쁜 편지지에 편지도 동봉되어 있었다.

달력을 보니 올해는 아들의 생일이 음력과 양력이 일치되었다. 나이 오십인 나도 아직 음력생일만 알지 양력생일은 언제인지 모른다. 알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자식을 키우다 보니 20년마다 음력과 양력이 일치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배움의 연속이요, 선물의 연속인 듯싶다. 그러한 의미 깊은 아들의 생일에 미역국도 못 끓여줬다 생각하니 가슴 깊은 곳이 아려온다.

이런 저런 생각에 출근을 해도 왠지 마음이 우울했다. 아들도 나오느라고 힘들었지만 나도 분만통증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나를 위로해주는 이는 누구도 없다. 아는 동생을 불러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할 것 같아. 생일인 사람도 축하를 받아야 하겠지만 그 아이를 분만하느라 애쓴 엄마도 위로를 받고, 축하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난 앞으로는 생일인 사람과 엄마에게도 같은 비중을 두고 축하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해” 동생은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며, 맞장구를 쳐 준다. 난 우울한 맘을 달래기 위해 나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즐겨 찾던 매장에서 포인트가 십만 점 가까이 된다고 한 말이 생각나 그 매장을 방문했다. 평소에 봐 뒀던 반지갑을 집어 들었다. 포인트에 만원 남짓을 보태 갖고 싶던 반지갑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포인트에게 말을 건넸다. “포인트야 고맙다. 이렇게 우울한 날에 나에게 좋은 선물을 줘서 정말 고맙구나”

아들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 그런 아들 덕에 오늘 지갑도 선물을 받으니 오늘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선물을 받은 날이라고 생각이 된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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