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심

함박눈이 내린다. 아이들의 기분을 알아차린 선생님은 하던 수업을 접고 완전무장을 시킨다.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맑은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 학부모님들께 급한 안내장을 보낸다.

‘영재유치원 부모님께

하얀 눈이 탐스럽게 내리고 있습니다.

손 틈새로 빠져나가는 흰 눈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서 내일 아침 등원 길 걱정을 하게 됩니다.제설작업이 잘되어 안전한 운행을 할 수만 있다면 많은 눈이 내려도 아이들과 신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텐데.....많은 눈이 내려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운행시간이 지연되거나 아예 못할 수 있음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경우 미리 문자로 통보 할 것이며 어려우면 차량 운행 없이 개인적으로 등하원 합니다. 직장 다니는 부모님들의 불편이 예측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이 아이들의 안전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장을 보내놓고도 밤새 창밖을 내다보았다. 운동장은 미리 눈을 치워두고 통학버스는 큰길 옆에 주차를 시킨 후 잠이 들었다. 선잠을 설치고 새벽같이 창문을 열었다. 다행히 더 이상의 눈은 오지 않았는지 햇살에 부서지는 은빛세상만 눈이 부실뿐, 하얀 솜이불을 뒤집어쓴 마당지기 소나무가 멋쩍은 인사를 건넨다. 내린 눈이 얼어붙어 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한다는 뉴스를 들으며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유치원차 올수 있어유?” 눈길이 걱정스러운 효열이 엄마다. 어제 보낸 안내장 때문에 걱정하셨구나 싶어 천천히 갈 테니 기다리시라 대답하고 출발했다. 큰길은 그런대로 많은 차들이 오가며 제설이 되어지는데 농가의 좁은 골목은 미끄럽겠다! 걱정하면서 스노바퀴를 의지하여 조심스런 운전을 한다.

동네 진입로 쪽에 무언가가 어른거린다. 멀리서도 우리 아이들은 한눈에 쏙 들어오는지라 효열엄마와 효열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고생 많으세유” 순박한 인사에 가슴이 뭉클하다. 눈길에 운전하는 나를 배려해 미끄러운 길을 걸어 나와서 떨고 있는 효열 네의 따뜻한 마음에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재원이네 생각이 났다.

딸 다섯을 낳고 태어난 늦둥이아들, 잘 키워 보고픈 부푼 마음으로 입학상담을 왔었다. 지금은 엎어지면 코 닿는 곳으로 가까운 성본리지만 길이 안 좋아서, 눈이라도 내리면 어찌할 것이냐는 궁색한 이유를 들어 입학을 거부 했었다. 그런데도 가까운 지인들을 통하여 계속 입학 청탁을 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끌려 눈 오는 날은 집에 데리고 있겠다는 부모님의 동의하에 입학을 허락했었다. 눈이 오니까. 바람이 많이 불어서, 길이 미끄러워서, 오지 마라. 데려다준다, 항상 먼저 전화를 하시던 재원엄마... 고맙고 미안해서 이만하면 갈수 있으니 걱정 말라 해도 시내 나올 일이 있어서 오는 길에 데려다 주는 거라며 삼년동안 단 한 번의 약속도 저버리지 않으셨었다.

성본리를 지날 때마다 멀어져가는 통학차 뒤를 한없이 따라오던 재원엄마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 계산되지 않은 배려로 타지에 와서 터를 일궈가는 내게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해 주던 미소도 생생하다.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눈 내리는 날이 무서운 나에게 지금까지도 용기를 주어 스노바퀴를 달고 눈부신 운행을 할 수 있게 한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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