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

오래된 냄비 하나가 있다. 친구처럼 삼십년을 지냈으니 친근감이 더 하다.

모양은 비뚤어지고 손잡이가 불에 녹아져 줄어들 만큼 그리 고운 모습은 아니지만 정겹다. 혹 남들이 보게 되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 할 것이다. 새것을 두고도 헌 것을 쓰는 이유는 여러모로 편하고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손이 가는 가까이에 두고 날마다 사용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내 삶을 다 지켜본 듯 아주 당당하게 주방에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 손잡이가 망가져서 흔들거릴 때는 이번에 버려 볼까 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손잡이를 다른 것으로 교체하고 나니 다시 튼튼한 몸이 되어 일거리를 맡기라는 듯하다.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씩 자기 몸을 깨끗이 해달라고 부탁하는 느낌이 오면 곧 수세미로 닦아준다. 이토록 내가 아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본다.

지나온 세월만큼 손때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전화를 걸어서 보고 싶다고 얘기 하며 오래도록 수다를 늘어놓아도 지루하지 않은 친구, 마치 저 냄비도 그렇다.

물건도 친구처럼 정이 들고 마음이 오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불 위에 올려 둔 채 자칫 방심을 하여 밑이 새까맣게 타 버린 적이 있었다. 철수세미로 박박 닦아내면 아픈 상처 사이로 본 모습을 드러내주어 고맙기도 했다. 친구와 다투고 난후 화해를 하고 마주 보며 웃는 기분이다.

옛날을 돌이켜 본다. 새댁 때 어머님이 사용하시는 낡은 그릇들을 보며 왜 저렇게 헌 것을 쓰실까 하고 구차하게 생각했었다. 내가 그 세월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마 며느리를 본다면 며느리도 부엌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만 같다. 어머님이 지금에서야 이해가 된다. 나도 닳아진 냄비만큼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때로는 노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상상을 해 본다. 그 내면에는 긴 세월동안 담고 퍼내온 인생의 진귀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오랫동안 사용한 냄비처럼 말이다.

언젠가는 냄비도 제몫을 다한 후 수명이 끝날 것이다. 그 후 재활용으로 건너가 용광로에 녹아져서 다시금 쓸모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 질줄 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에게 또 사회와 이웃들에게 좋은 기억의 표상으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정든 냄비, 지금껏 나와 가족을 위해 많은 세월 부엌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잘 견디어 왔다. 지금의 우리가 아닐까. 가정을 지켜 가기위해 알뜰히 살아왔고 헌신해야만 했던 여자의 모습이라 말하고 싶다. 나도 그렇게 닳아질 것이다. 유행이 지난 그릇이 된다 해도 한쪽으로 밀쳐 두지 않고 필요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득 친구의 얼굴이 떠올라 전화를 걸어본다. 저만큼에서 귀에 익은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들의 얘기는 낡아진 냄비 안으로 들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즐거운 수다에 시간이 흐르고 냄비에는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맛있는 냄새가 집안에 풍겨 진다. 들고 있던 전화기를 귀에 대며 “친구야 조금 후에 다시 전화 해줄께.” 라고 말하며 가스 불을 낮춘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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