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득

호수는 얼굴을 덮은 채 말이 없다. 겨울의 눈보라와 칼바람이 빚어 놓은 빙판 한 조각의 위력이 저토록 경이로울 수가 있단 말인가 가슴에 찡하는 울림을 준다.

맑은 하늘에 흰 구름 높은 산에는 수묵화 땅 위에는 흰 눈 향기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은 무향과 무색의 조화 마치 꿈속을 걷고 있는 듯하다. 나는 곰처럼 옷을 입고 한참 동안 설경에 심취되어 털모자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는 것도 모르고 서 있었다.

평생을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살다 보니 보이는 것도 자연이고 들리는 것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산골 아낙이지만 후회도 미련도 원망도 하지 않는다. 자연은 언제나 거룩한 스승이고 그 스승은 빈 가슴에 희망을 심어주었다. 호숫가의 가로수와 수초들 모두가 열매를 떨군 빈 가지다. 그 빈 가지에 찬란한 눈꽃은 무소유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자식을 위해 살아가지만, 자연은 오로지 인간에게 베풀기 위해 온갖 시련과 역경을 부딪치며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다. 차디찬 얼음을 숨이 막힐 만큼 품고 있어도 호수는 산의 그림자만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모습이 성스러우면서도 왠지 가슴이 아리다.

무엇보다 호수는 그 산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가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산과 호수는 한 몸이 아닐까. 호수를 거닐다 보니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맑은소리는 호수 속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심장의 울림 바로 산골짜기에 빙하를 뚫고 흘러내리는 물소리였다.

겨울 호수를 덮고 있는 빙판의 도화지 한 장 이 세상 누구도 구할 수도 만들 수도 없는 설경의 도화지가 아닌가. 내가 15년만 아니 10년만 젊었어도 호수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산속의 수묵화 한 점이라도 그릴 수만 있다면 호수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감탄을 하지 않을까.

그러나 바라보기만 해도 성스럽고 엄숙해 보이는 빙판 위에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 것인가. 잠시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본 것이었다.

그때였다. 호수가 저쪽에서 젊은 남자가 성큼성큼 빙판을 걸으며 발자국을 새긴다. 겁이 덜컥 났다. 행여나 얼음이 깨지면 어쩌나 그러나 그 남자는 무덤덤하게 걷고 있다. 역시 젊음은 위대한 것인가. 넓은 빙판을 무심히 걷는 사연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과거의 슬픔을 애써 지우려는 것일까? 새해의 꿈을 노래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 노래는 혼불을 지펴낸 노래가 어떤 노래일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부르는 몇 곡의 노래는 내 인생의 동반자로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망상에 젖어 본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고즈넉한 호수에 조상들의 애환이 녹아있고 추억이 서려 있는 곳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그리움과 향수로 남아 있는 원천의 뿌리 그것이 바로 마음의 고향이 아니던가.

올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오고 춥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봄은 분명히 올 것이다. 빙판도 칼바람도 훈풍에 밀려 그 자리를 물러서야 할 것이다. 겨울을 이겨낸 호숫가에 봄을 절규하는 뭇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애달프게 그리워하던 호수와 하늘과 산 구름 물고기까지 모두 모여 축제라도 하듯 봄바람과 함께 살랑대며 춤을 추지 않을까.

마을 속으로 작은 시냇물을 따라 산골짜기를 파고 들은 호수 산이 겹겹이 둘러쳐 있는 모습이 아담하면서도 기품이 서려 있는 청정한 호수 생명의 젖줄이자 모태와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봄이 오면 세월의 한 자락이 소멸 되고 나는 한 살 더 먹게 되며 그 한 살의 의미는 아마도 젊은 시절의 십 년보다 더 소중할 것이다. 이제야 말로 하루의 끝 자락도 너무 아쉬운 시간이다.

세월이 무색할 만큼 찬란한 자연의 빛과 숲이 토해내는 자연의 숨결을 머금고 사는 동안 한 줄의 시를 읊어가며 한 줄의 시와 함께 마음을 갈고 닦을 때 먼 훗날 무소유의 향기로 남아 있기를 소망해 보지만 자연의 무소유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으리라.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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