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

자전거를 타보고 싶었다. 예전부터 운동신경이 둔한 터라 엄두를 낼 수 없었는데 배우기로 결심을 했다. 남편이 애써 뒤에서 붙들어 주며 페달을 돌려 보라 했지만 한 바퀴도 못 돌리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다리는 온통 멍투성이가 된 채 가족들에게 핀잔을 들었다.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수없이 반복되어진 후 제법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그때의 기분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다.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몇 바퀴 돌았다. 기우뚱대면서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을 보고 이웃사촌들이 웃어대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자전거와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 듯한 가벼움 속에 불어오는 바람조차 신선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혼자만의 여유를 갖는 것에 대해 만족함을 얻은 것이다. 생활 속에서 쉽게 찾아내어 그 가치를 얼마든지 만끽하며 자전거 타기에 매료되기 시작 했다.

적당한 바람이 불어오면 더 즐겁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게 되어도 잔잔한 강물을 곁에 한 둑길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자신이 들꽃처럼 낮아진다. 형형색색의 꽃들은 저마다 아우성을 치면서 햇살 속에 나란히 낮은 키로 피어 있다.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숨은 듯 몸을 낮추고서 꽃들이 전해오는 순수함에 젖어본다. 잠시 눈을 감고 세상 속에서 조화되고 있는 음악의 선율을 듣는 듯 감미롭다. 이처럼 제몫을 감당하며 질서 있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얻은 즐거움도 자전거가 가져다준 하나의 선물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은 풍선처럼 하늘을 오르고 다리는 힘껏 페달을 밟는다. 내려앉는 오후의 풍경은 주홍빛 노을로 온통 가득하다. 노래를 부르며 혼자서 작은 길 위의 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여유로움이 그만인 시간이다.

자전거의 움직임이 작은 우주 즉 가정이란 굴레의 바퀴와도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지켜야지만 앞으로 나아가듯 가정이라는 곳도 같은 이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두 바퀴의 역할이 곧 부부가 한 몸이 되어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상호 보완 속에 어느 한쪽도 멈추지 않아야만 굴레가 지속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높은 날개도 가지지 않았으며 커다란 몸짓을 품지도 않았다. 단순해 보일 지라도 나만의 자리에서 중요함을 지닌 가운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행복의 크기가 작을지언정 가까이 다다를 수 있는 즐거움이란 종착역을 향해 언제나 바퀴의 의무를 다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가정과 가까운 사회와의 조화로움이다.

이처럼 삶의 여유가 내 안에서부터 시작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며 찾아내는 일이다. 푸른 하늘이 더욱 눈부신 날 가슴에 햇살을 담으며 즐겁게 자전거를 타고 싶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노래는 높아질 것이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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