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숙

1950년생을 중심으로 앞뒤로 10년 안에 태어난 사람들을 나는 소용돌이 세대라고 부른다. 요즈음 흔히 말하는 베이비부머 샌드위치세대(1955~1961년생)와는 좀 다른 얘기다. 샌드위치세대란 부모부양 마지막 세대 ,자식에게 부모 대접 못 받는 첫 세대를 말한다. 거기다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여든, 아흔 살까지 살아야 할 자신의 미래를 환갑이 훨씬 넘은 육십 대 노인들더러 걱정하라고 왜 걱정 안하느냐고, 자식이 책임지지 않는다고 나라 안팎에서 난리들이다.

그래도 샌드위치세대들은 소용돌이 세대보다는 좀 나은 펀이다. 높은 교육 수준 향상과 나라 경제 발전과 함께 성장한 샌드위치세대들은 자영업을 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거나 돈이 되었기 때문에 부모 모시고 살아도 뼈저린 고생은 하지 않았다. 노후준비도 염두에 두고 한 것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살았다면 충분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경제력은 확보 했으리라 믿는다.

소용돌이 세대들에게 있어 자아는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다. 더구나 막연하게 미래의 자아를 찾아 헤매라니 그것도 십억 백억 해가면서 말이다.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부모님뿐만 아니라 맏이는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둘째 셋째는 맏형을 공부시키기 위해 자신은 포기해야 했다. 부모님께 사랑 받아야할 막내는 어떠했는가. 동갑이거나 몇 살 차이 안 나는 장조카 공부시키기 위해 배운다는 거에 엄두도 못 낸 사람들도 많다. 맏형 덕에 먹고살았으니 보답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여자들은 더 그랬다. 오라버니와 동생들 공부시키려고, 생계는 물론이고 학비까지 벌어서 대야 했기 때문에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만근 잔업을 해가며 일을 해야 했다. 이렇게 자신을 포기한 채 산업의 역군으로 농업의 일군으로 이들이 나라 발전의 기여도는 나라 대령 령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샌드위치 세대들이 혼인할 무렵 가족 계획을 계몽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그래도 이런 표어는 좀 나았다.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자꾸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아마 지금 같으면 인권 유린이나 언어 성폭력으로 정부는 백성들에게 고발당했을 것이다. 부모님들은 아들 날때까지 낳으라고 하고 정부에서는 셋 낳으면 야만인이라고 하고 심지어는 딸만 낳았다고 쫓겨 가는 여인들도 있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억지로 시킨 가족계획이 마치 샌드위치 세대들의 잘못인양 많이 낳으라고 정부에서도 난리다. 그 때나 지금이나 뚜렷한 방향은 제시하지 못한 채, 그때는 무조건 낳지 말라고 하고, 지금은 무조건 많이 낳으라고 한다.

재산상속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젊었을 때는 맏이에게만 상속권이 있었기 때문에 장손들은 재산 상속에 대하여 연연해하지 않았다.

상속권이 주어지면 형제간에 나눌 줄도 알았다. 차손은 장손이 주는 대로 감지덕지 받았다.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얼마 되지 않는 땅뙈기에 피땀 흘려 가며 농사 지어 부모 부양하고 동생들 공부 시키고, 가게 하나 딸린 집에서 허리 부러져라 일해 가면 집안 일으켜 세웠건만 아버지 돌아가시자 형제들은 이들의 가슴에 비수를 들이댄다.

땅 팔아 집 팔아 칠, 팔남매가 법대로 똑같이 나누니, 손에 쥔 돈이 전세방 거린지 월세방거린지 알지도 못하면서 조상님 봉제사 받들 걱정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정부의 그릇된 민생 정치 때문에 이들은 평생을 소용돌이 속에서 산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