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교

지난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마당가에 꽃들이 하나둘씩 피어난다. 마당 건너 앞산에는 벌써 개나리와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핀 꽃이라 그런지 더 화려하고 곱다. 다른 지역에는 벚꽃이 만발하여 축제를 한다고 야단인데 우리집 벚나무는 아직도 봉오리를 오무리고 있다.

마당가에는 연산홍이며 산당화, 꽃사과, 장미 ,홍매실,앵두나무와 작년에 심은 자목련 등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붉게 핀 홍매실이 가장 먼저 피고 앵두꽃이 하얗다.

화려한 작약, 청초한 도라지도 때가되면 피겠지만 지금은 붉은 홍매실과 꽃잔디가 예쁘다. 모든 꽃들이 한 번에 피고지면 얼마나 허전할까. 시차를 두고 피기 때문에 꽃을 보는 즐거움이 이어진다. 시간을 나누어 피어나는 꽃들과 각기 다른 독특한 향을 가진 모습에서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느낄 수가 있다.

며칠 전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진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향내 나는 곳을 가만 가보니 겨우내 거실에 갇혀있던 화분 중에 감귤나무가 꽃을 피웠는데 거기에서 나는 향기였다. 작년 늦봄에 선물로 받았는데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감귤나무가 이렇게 향이 진하고 좋은 줄 몰랐다. 날씨가 따뜻하여 밖에 내 놓았더니 벌들이 많이 찾아왔다.며칠 지나 꽃이 지면서는 오밀조밀 여러개의 열매가 맺혔다.

꽃은 향기와 함께 보는 사람의 오감을 열어 몸이 충만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며 마음에 상쾌함을 느끼게 한다. 봄풀, 봄나물의 향기, 들에 핀 야생화의 향기, 집안의 감꽃 향기 등. 어느 꽃, 들풀이나 모두 향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누구나 그에 어울리는 인생의 향을 지니고 산다. 좋은 향, 역겨운 향, 가까이 하고픈 향, 멀리하고픈 향이 있지만 좋은 꽃과 향기 앞에서 화낼 사람은 없을듯 하다.

이웃을 위해 살신성인 하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은 어떤향에 비유될까. 장미 향 혹은 라일락 백합 향 등 에 견주어 본다면 어떨런지..

보름 전 적십자 봉사회에서 새터민과 사할린동포 그리고 봉사원들이 힘을 합쳐 삼천여 평의 드넓은 밭에 씨감자를 심었다. 너무 넓어 언제 다 심을까 걱정했지만 부모를 따라온 고사리 손 등 남녀노소 80여명의 인원들이 힘을 합쳐 열심히 한 결과 오후 한시쯤에 모두 끝내고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바람도 불고 썩 좋은 날씨는 아니었으나 생각보다 일찍 끝이 난 것은 모두가 눈치 안보고 내 일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할린 동포 여러분들이 연세가 많으신 데도 불구하고 내색 없이 웃으면서 일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 또한 들풀 향 못지않은 사람의 향기일 것이다.

세상사는 사람도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개성과 독특한 향이있다. 향기가 진한 사람, 옅은 사람, 좋은 사람, 그러지 못한 사람 등 각양각색 이겠지만 이왕이면 감귤향처럼 은은하고 감미로운 인생의 향기를 지니고 산다면 아마도 우리의 삶이 더 아름답고 윤택하게 바뀔지 않을까.

나는 과연 이웃들에게 어떤 향을 풍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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