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숙

대부분의 여인들이 부부간에 풀지못한 응어리 하나씩을 가슴에 맷돌짝 얹어 놓은 것처럼 안고 살아 갈 것이다. 우리 내외도 예외는 아니다.

부부싸움을 한다거나 나에게 화를 낼 일이 생기면 남편은 안거를 했다. 남편의 이런 행동을 나는 안거가 아니라 불안거라고 이름지었다.

왜냐하면 아내를 불안하게 하는 행동이며 남편은 안거일지 몰라도 나에겐 완전 불안거다. 한 번 안거를 시작하면 식사도 제 때 하지 않고 말도 없이 일주일도 좋고 한 달도 좋다. 세월이 갈수록 횟수도 잦아지고 시간도 길어졌다. 나중엔 무슨 말만 해도 안거를 시작했다.

동안거나 춘추안거는 걱정이 덜되는데 하안거가 문제다.속 터지는거야 이루 말할수 없지만 저러다가 건강이나 해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빌어도 보고 뭐하는 짓이냐고 으름장도 놔 보고 울며 불며 매달려 봐도 그 때뿐이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시작한다.이래도 안돠고 저래도 안되고 애도 많이 먹고, 속이 문드러졌다.

안거만 하지 않으면 팔,구십점짜리 남편인데 부족한 이십점이야 내가 힘들이지 않고 채워서 백점짜리 남편으로 만들수도 있는데 안거 때문에 이 십점짜리 남편이다.

남편의 잦은 안거의 끈을 놓기 시작한 것은 십년 전쯤이다. 애초에 남편의 버릇을 뜯어 고치려고 섣불리 덤빈 것이 잘못이고 내힘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거를 시작하면 '그래, 도 닦아서 이 다음에라도 나한테 잘 해라' 밥상도 봐 놓지 않고 일부러 요기 될만한 음식은 모두 치워버렸다. 혼자 라면 삶아 먹고 들어 가는 남편을 보면, 남편의 등에 주먹질을 해대며 땀때기나 흠뻑 나라고 빌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슴을 슬어 내리며 나도 고행하는 심정으로 십년 세월을 보내야 했다. 어느 정도 적응을 해갈 무렵 남편의 안거의 횟수가 줄어 들고 시간도 짧아지더니 언제부터인가 씻은듯 부신듯 그만 뒀다.

요즈음은 남편에게서 안거할 때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안거를 그만 둔 대신에 불염불(불안한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국이 짜네 싱거우네, 밥이 지네 되네, 이 물건이 왜 나와 있느냐 뭐는 어디로 갔느냐 불염불이 너무 심하다. 안거할때 매겼던 이 십점 마저 빼앗고 싶은 심정이다. 늙으면 양기가 모두 입으로 모인다더니 꼭 그 짝이다.

어제 저녁 밥상머리에서 아주 심각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남자는 세 여자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인생이 편하다는데 이건 원! 꼭 한여자가..." 나는 누구누구 셋이냐고 물었다.

"엄마, 마누라, 네비." 이 건 완전 나를 무시하고 하는 발언이다. 나도 이삼년에 한번씩 업그레이드 시켜 달라고 말했다. 어머님의 말씀은 알아서 잘 듣고 내가 부탁한 일은 들을 것도 안 들으면서, 말을 안 듣겠다는 건지.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는다. "어떻게 업그레이드를 시키는 건데."

"불염불만 하지 않으면 나는 자동으로 업그래드 돼 나는..." 남편이 이 말을 알아 들을 리가 없다.

내 인생의 일막은 남펀의 불안거 때문에 고행길이었고 이 막은 남편의 불염불 때문에 고행길이 될 것이다. 일 막은 쥐나 잡는 고양이었지만 이 막은 건드리면 해치는 호랑이다.

어흥!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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