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오래된 편지가 한장 있다. 지금은 편지라 하지만 그 편지를 쓰던 때에는 간찰 이라 했다.
편지를 쓴 주인공은 안동 권씨 가문에서 최고의 벼슬을 한 이제(彛齊)권 돈인(權敦仁)이 쓴 것이다.
그는 추사의 가장 절친한 친구로 추사집 중 한권이 그에 대한 것이니 그 우정의 깊이가 어떠 했는지 짐작 할 수 있다.
이제는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 작은 세필은 나보다 더 잘쓴다는 칭찬을 추사로 부터 들었던 그 작은 글씨의 간찰은 중국 분당지에 어제 쓴 듯 먹빛이 산뜻하다.
오래전 어떤분이 이제 간찰집 한권을 보여주며 한 장만 가져가라기에 가장 좋은 좋이에 쓴걸 골랐더니 역시나 그 간찰은 좋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 한의사를 오랫동안 직업으로 하시는 할아버지가 한 분계신다.
지금도 상투를 트시고 갓쓰시고 하얀 두루마기 입으신채 활보 하시는 분으로 한학에 밝으신 분이다.그분의 도움으로 간찰의 내용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정자로 또박또박 옮겨 써 주시고 해석을 해 주셨다. 그 내용을 보면 이제가 조카에게 보낸 것으로 조카가 부탁 했던것에 대한 답변이다.
“내가 이렇게 높은 벼슬을 하고 있다만 너의 어머니도 병중이고 너도 어려운걸 알고 있으나 지난번 6월 도정에 네가 관리로써 부적당 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을 사사로이 봐 주라고 할 수가 없구나 모쪼록 네가 잘 이해하고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
그 때는 ‘6월 도정’이라는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공무원을 심사하는 것으로 계속 근무해도 좋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으로 공무원인 조카가 부적격 판단된 것을 봐 주기를 청한데 대한 답변이다.
조선시대 선비의 대쪽같은 단면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요사이 처럼 혼탁 한때에 삶의 거울이 되는 내용이다.
백년 이상 된 편지 한 장이 그런 좋은 뜻을 담고 있어 잘 보관 하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딱 맞는 말이다.
세한도는 추사의 것이 잘 알려져 있고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제의 유작으로 전해지는 세한도(歲寒圖)그림에 김정희가 다음과 같이 찬을 썼다.
“화의(畵意)가 이러한 뒤에야 형사(形似)를 벗아나게 된다. 이러한 화의는 비록 옛날의 이름난 화가라도 얻을 자가 극히 적다.
공(公)의시(詩)만이 공교(工巧) 할 뿐 아니라 그림 또한 그러하다.” 한껏 칭찬이 가득하다.
그는 1813년 문과에 급제 병조판서, 경상도 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거쳐 헌종때 영의정을 지냈다. 일찍이 서장관 및 사은사로 두차례 청나라에 다녀왔다.
76세에 연산에서 귀양중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정치란 예나 지금이나 힘든 일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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