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치르는 행사가 있다. 바로 철따라 바뀌는 옷들을 정리하는 일이다.

예외 없이 이번 여름철에도 옷 정리를 하다 보니 버리기 아까워서 넣어두고 또 넣어둔 옷들이 태반이다.

박스에 메모지를 붙인 다음 장롱위에 계절별로 정리를 한다. 키가 작은 탓도 있지만 장롱이 높기 때문에 의자를 이용하게 된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박스를 얹으려면 요령이 필요한데, 의자 끝을 잘못 밟는 바람에 박스와 함께 방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내 부주의는 탓할 생각도 없이 아프고 속만 상했다.

혼자 입는 옷도 아닌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힘들다는 푸념을 하다 보니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요즘처럼 의자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 살았던 내게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앉아본 볼품없는 작은 나무의자가 처음이었다.

신기하고 좋아서 빨리 학교에 가고 싶었고, 천천히 집에 오고 싶었다. 한번은 의자에 올라가보고 싶어서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의자위로 올라갔다.

올라서서 일어나려는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해서 교실바닥으로 떨어졌다. 아프다고 투정부리기보다 누가 볼까봐 두리번거리며 빨리 자리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똑같이 딱딱한 나무의자는 바뀌지를 않았다. 그렇게 신기하고 좋았던 나무의자가 볼품없고 불편해서 싫어졌다.

또 다시 볼품없는 의자와 마주하게 된 것은 결혼을 해서다. 80년대 시골에서는 많은 집들이 재래식 부엌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작은 공간이지만 현대식 주방시설이 되어 있고, 식탁이 놓여 있었다. 주방이 비좁아서 다른 가족들에게는 애물단지처럼 보였겠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창에 비치는 햇살을 벗 삼아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앉으면 멋없이 딱딱한 의자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방이 좁다는 이유로 식탁을 치우게 되었을 때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서운했었다.

지금은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서 주방이 여자들만의 공간이 아니지만 그 시절 주방은 대부분 여자들만의 공간이었다.

얼마 전에 동생네가 이사를 해서 방문하게 되었다. 넓은 집도 마음에 들었지만 멋진 식탁과 의자에 눈길이 먼저 갔다.

그리고 그 옆에 서있는 동생 부부를 보니 식탁과 의자처럼 서로 잘 어울려 보였다. 동생네도 시작부터 멋진 식탁과 의자로 만난 것은 아니다. 힘들게 시작했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20년을 지나고나니, 지금의 안락의자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

부부도 의자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멋지고 화려하게 시작한 부부도 서로가 편안한 의자가 되지못해 서성거리는 부부들이 많아지고 있다. 꼭 비싸고 멋지지 않아도 좋다.

언제 앉아도 편안하고 오래앉아 있어도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는 그런 의자가 가장 좋은 의자인 것 같다. 아직도 나는 딱딱한 의자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남편이란 안락한 의자가 내게는 있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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