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시커먼 가마솥을 생각한다. 그 밥솥에 찐 달걀찜이 먹고 싶다.
할머닌 달걀에 새우젓국물을 넣고 파에다 고추가루, 깨소금을 풀어 이따금씩 달걀찜을 해 주셨다.
지금도 어릴 적 먹던 그 달걀찜이 생각나 아이들에게도 가끔씩 해준다.
처음엔 먹기 꺼려하더니 이젠 숟가락이 불이나게 오고가서 나중 먹는 사람 몫을 떼어놓지 않으면 남길 나위가 없이 된다.
난 달걀찜 할때 익었나 안 익었나 뚜껑을 열고 확인해 본다. 숟가락으로 열십자를 내 겉만 익은 달걀을 골고루 익게 한다.
달걀찜을 할 적에만 할머니 생각이 나는 것은 아니다. 자그마한 키에 굽은 허리, 하얀 얼굴과 어린아이에게만 있을 법한 천진한 웃음, 늙으면 아이가 된다고 했던가?
그 말을 실감하는 건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 속에서도 확연하게 알 수가 있었다. 돌아가기기 전 할머니의 모습은 미소 그 자체였으며 그 미소 속에는 거짓과 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심의 경지였다.
나이가 많아 똥을 싸는 것도 모르고 누워 계신 할머니를 보고 내 속으로 ‘빨리 돌아가셨으면’하는 마음을 얼마나 많이 가졌던가?
그것이 할머니를 가장 위하는 일이라고 자위하면서도, 그게 서로에게 편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못내 마음은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내 가슴을 더욱 시리게 하는 것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내뱉았던 그 말 때문이다.
생명을 어찌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난 돌아가신 할머니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낀다.
그 때 가느다란 숨을 움켜쥐고 죽음과 싸웠을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저 안스럽고 죄스럽다. 죽음 또한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그 공포를 혼자 느끼며 가셨을 할머닐 생각하면 그저 송구할 따름이다.
지금은 다른 할머니를 통해 내 할머니를 본다. 그래서 지나가는 꼬부랑 할머니를 보며 살아 계실때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 별명은 꼬부랑 할머니였다. 그때는 남들이 할머니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할머니를 업신여기는 것 같고 할머니를 늙고 추하게 부르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도 정겹게 느껴진다. 난 일부러 그 할머니와 눈을 마주친다. 그러면 그 할머니도 내가 당신 손녀인양 웃어준다.
그렇게 눈인사를 하고도 나는 이내 뒤를 돌아본다. 그 뒷모습 하며 맴도리가 내 할머니를 닮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노년은 돌아온다. 지금 노년을 맞은 사람도 유년기, 장년기가 있은 다음에 노년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 놓은 땅 위에 우리가 서 있다.
또 내가 맞을 노년을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젠 내 어머니, 아버지에게 어떤 곤경,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빨리 돌아가셔야 할텐데’하는 마음은 먹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할머니께서 내게 마지막까지 주고 가신 커다란 말씀이다.
누구나 아름다운 황혼을 꿈꾸며 산다. 또 죽음에 있어서도 자식에게 피해 안 끼치고 가야 한다고 고심한다.
그러나 나에게만 특별한 죽음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욕심일 뿐이다.
그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것이 제일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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