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래수

거미줄에 걸린 나비 한 마리가 헤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보고 측은지심이 생겼다. 구해 주려고 다가서는 순간, 먹이를 빼앗기면 거미가 굶주릴 것을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실로 난감하다. 나비를 구해주자니 거미가 슬퍼할 것이고 그냥두자니 나비가 너무 불쌍하다.

나의 어리석은 잣대로 평가해서 선한 쪽을 택하기로 해보았다. 거미는 익충이지만 음흉한데가 있고 집 안팎을 어지럽히고 혐오스러운 반면 인내와 지혜의 철학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나비는 해충으로서 경박스럽고 채소 등에 피해를 주기는 하지만 발랄하고 경쾌하여 우리의 정서를 밝게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한다. 어는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눈 찔끔 감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기로 했다. 나비가 거미줄에 벗어나는 것도 거미가 배를 채우는 것도 자연의 법칙일 테니까 결국 맹자의 성선설도 순자의 성악설도 다 뒤로하고 노자의 무위자연설을 택한 것이다.

선과 악은 상대가 존재하므로서 서로를 보완한다는데는 별 이의가 없기 때문이다. 악이 존재하지 않는 다면 선의 의미는 무색해진다. 악이 거울이 되어 선이 더욱 드러나게 된다는 그레샴의 법칙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때론 선하게 때론 악하게 행동하며 스스로를 잘 통제하지 못하고, 되도록 선한 쪽으로 치우치고 싶어 하면서도 악의 유혹을 억누르기는 쉽지 않다.

오늘 거미줄에 얽힌 나비를 보며 새삼 중용의 도와 무위자연을 배우게 된다. 흑백논리에 길들여진 내 인생의 길라잡이가 된 것 같아 가슴에 파장이 인다.

나비가 자신의 경박함을 탓할 것만은 없다. 그 경박함이 비록 생명을 단축했다하더라도 한때는 온 산천을 마음껏 날며 아름다운 꽃들의 달콤한 꿀을 한껏 먹으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지 않았던가.

거미 또한 음흉함이 어찌 비난의 대상만이던가. 인내하고 지혜로움과 기다림으로 배부름을 얻지 않았는가.

서로가 최선을 다하여 치열한 삶을 살다보면 선과 악이 병행하여 가는 것은 우주의 섭리이니 슬퍼하거나 위축될 이유가 없다.

나의 삶 또한 더도 덜도 말고 중도를 지키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되도록 선한 쪽으로 좀 더 기울어지려고 노력한다면 악하다는 이미지는 면하지 않을까 해본다.

다만 그 무게의 가늠을 어떻게 할지가 의문이긴 하다. 황희 정승의 네 말이 맞다. 네 말도 맞다. 너의 말 또한 맞다 는 일화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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