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의당 뜨거워야 할 8월 한여름이 뜨겁지는 않고 추적추적 비만 내린다. 장마가 끝난지가 언제인데 난데없이 8월 햇살보다 뜨거운 복지논쟁이 TV를 뜨겁게 달군다.

이유인즉 서울시 학생들 점심을 서울시가 먹여줄 것인가 아니면 내돈을 내고 먹을것인가의 원초적인 내용인데 여기에 복지자가 붙으니 정치 논쟁이 되고 이 정치 논쟁이 가관이다.

국민 누구나가 누려야 할 복지가 왜 정치하는 사람들 손이나 입으로가면 뜨거운 감자가될까? 복지(福地)! 복을 누리어 잘살만한 땅! 사전에는 어원이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정치를하는 사람들이나 모임에 대표가 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약속은 자기 무리에 종속들에게 복지를 내세워 잘먹고 잘입고 잘자고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약속을 하는데 자기와 경쟁관계에 있는 정적이 내세우는 복지 논쟁은 거지근성이고 나라를 망치는 정책일까?

국민들은 누구나가 국가에서 주는 복지에 기대를 걸고 부과하는 세금을 불평없이 내며 공평복지를 기대해본다. 여기에는 부자나 가난한 이나 똑같은 복지를 누릴 수 있다. 공평복지 이기 때문이다. 이런 복지제도가 수없이 많으나 나라마다 지방마다 사정이 다르니 실행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학교라는 한정된 틀안에서 무상급식이란 돈 이전에 학생들이 얻는 이익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국가가 얻는 이익이 너무나도 막대한 것을 알수가 있다.

논거해보면 우리보다 잘살거나 사정이 비슷한 나라들도 우리와 같이 무상급식을 하는데 이유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맞춤영양식을 제공할 수 있고 집에서는 하기 힘든 식사예절, 단체예절을 배울수가 있고 어느집이든 왕자 같은 자식이기에 고쳐지지 않는 편식 습관을 고칠 수 있고 우리 농산물로 식단을 짜며 우리 먹거리에 소중함을 배우고, 한번 길들여지면 죽을 때 까지 고쳐지기 힘든 입맛에 대한 길들임을 단체로 조기에 할 수 있고 무었보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같은 식사를 하며 같은 존재 일체감을 배울수 있고 등등 일일 다 열거할 수가 없을만큼 가치가 있다.

헌데 나와 다른 정적이 다른 복지정책을 내놓았다고 방금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 같이 선전해대고 부자들은 세금 걱정에 잠못잘 것 같이 선전해대는 이런 정치집단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집단이 분명하다.

복지 포플리즘! 예전에는 잘안쓰던말인데 요즘 특정집단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복지 포플리즘이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있다면 잘못 입안된 복지법안과 정책이 있을뿐이다. 복지법이란 국민소득, 즉 국민총생산량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과거 50.60년대 복지법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던 때를 보면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복지란 국부를 창출해낸 국민의 몫인데 생색을 정치하는 사람들이내면 안된다.

정치가들이 말하는 복지란 자기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세금으로 하는데 다른 예산은 다 삭감하고 복지예산만 늘릴수 있나!

복지예산도 나라 형평에 맞게 거두고 쓰는 것이다. 복지정책을 잘못 입안해서 혼이난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앞선 복지국가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이나라는 지금도 영국이 못따라가는 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어떤 복지법인가보다 어떤 방식이 중요한 것이다.

서울시민 투표 참여율을 보면 서초.관악.강남이 30%를 넘었고 도곡동 타워펠리스는 60%가 넘는 투표율을 보였다. 이는 무었을 말하는가? 서울시민 복지에 부자세금으로 충당한다는 잘못된 논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거짓 논리에 더 이상 속지 말아야한다. 우리나라의 세금징수법을 보면 많이 벌고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하고 징수하는 직접세법이 아닌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부과하고 징수하는 간접세에 골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복지예산을 부자들이 충당한다는 논리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서울과는 거리가 있는 음성에서 서울시의 복지를 논거하는 것은 현 서울시의 복지가 우리국민 복지법 입안에 근간이 되고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복지의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을 누리어 잘살만한 땅을 만들고 가꾸는 것이 능히 나라를 경영하고 통치하는 지도자들의 궁극적인 이념이고 목표인데 이 목표 뒤에 딴 뜻을 숨기고 복지를 운운하는 지도자들은 선거를 통해서 심판해야하는 것이 우리네 민초들의 몫이다. 선심성 복지제도로 내 야망을 채우기 위해 민초들을 대립 시키고 편을 갈라 양분시키는 행위야말로 지탄의 대상이 아닌가!

우리네 복지정책도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보다 잘정비되고 앞선 제도도 물론 있다.

국민 모두가 공평복지로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배려하고 치우침이 없는 복지제도의 입안을 기대해보며 복을 누리어 잘살만한 땅을 만드는 것은 지도자들만의 몫이 아니고 그 땅안에 살아가는 우리네도 막중한 책임이 같이 존재함도 언론에서는 알려주어야할 것 이다. 우리 후손에게! 아니 우리도 더 좋은 복지제도속에 복을 누리어 잘살만한 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꿈을 그리어보며

우리땅에 우리 형편에 맞는 참된 복지를 앙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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