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음성소이우체국 근무, 한국문인협회 음성지부회원)

나는 산을 좋아한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좋다. 가을은 고운 색으로 갈아입어서 좋고 겨울은 순백색의 눈이 나뭇가지에 쌓여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같아 보여도 산은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이다. 그동안 산에 자주 가지 못했다. 주말에는 전원주택인 “해 뜨는 집”에 가느라 다른 취미는 가질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7년을 정들여온 그 집을 올봄에 팔게 되었다. 주말이면 시간 전부를 보내던 곳이라 우리는 둘 다 갈 곳이 없어졌다. 할 일도 없게 되어 무료한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가 고민이었다. 그리하여 나선 산행이다. 등산은 큰 아주버니 네를 따라 나선 군자산을 시작으로 해 뜨는 집을 판 서운함을 잊게 해주었다.

남편은 3남 2녀 중에 막내다. 삼형제가 차로 십분 거리에 있는 음성 지역에 모여 산다. 우리가 등산 행렬에 끼면서 작은 아주버니 네도 산악회를 등지고 합세하는 날이 많아졌다. 삼형제 내외가 등산을 하게 된 것이다. 일명 가족 산악회인 셈이다. 버스 가득 사람들을 싣고 온 산악회가 부럽지 않다. 그들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형제임을 짐작하는 순간 우리를 부러워하곤 한다.

우리는 길가에 핀 들꽃을 들여다보고 이름도 불러본다. 어쩌다 새로이 알게 되는 이름도 있다. 때때로 산을 오르는데 힘들기는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오랜 시간을 비바람에 다듬어진 바위와 고목에 눈길을 붙잡히기도 한다. 이렇게 오르는 산행은 남들에 비해 두 배의 시간을 소요한다. 또한 바람은 산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시원하다. 지친 사람들의 한 줄기 위로다. 이 위안을 제대로 즐기는 그이는 온몸 투성이의 흘러내리는 땀을 바람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땀은 모습을 감춘다.

등산은 달리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정상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경치가 좋지 못하면 실망하곤 한다. 어쩌다 괜히 왔다고 후회하는 이들도 가끔 만난다. 오로지 꼭대기만을 보고 올라왔기 때문인 듯하다. 오는 동안의 잔잔한 기쁨을 그들은 모르고 지나쳐 중간 중간 쉼표를 찍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들보다 늦은 걸음이었지만 산위에서 누구 하나 실망하는 이가 없다. 오히려 경이로움에 감탄한다. 자연을 보고 느끼고 즐기며 왔기에 이미 산이 마음 안에 자리 잡아서가 아닐까. 그리고 바람의 부드러운 소통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산은 오르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오르기 위해서, 그리고 내려오기 위해서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정의내리고 싶다. 산은 오르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리막도 있다. 아니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운 평지도 나타난다. 몇 개의 봉우리를 넘고 다시 넘어야만 그 산의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사람들은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기도 한다. 힘들게 올라가야만 정상을 볼 수 있다는 같은 이치 때문이지 싶다. 나는 인생을 정상을 향한 하나의 오르막과 내리막으로만 보지 않는다. 산처럼 여러 개의 봉우리를 힘들게 오르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면서 가다 보면 만나는 평지. 거기서 숨을 고르리라.

나는 산에서 길을 묻는다. 지금까지 숨차도록 수 십 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올랐건만 나의 정상은 어디냐고. 산은 아직 묵묵부답이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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