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희

얼마 전 시어머님께서 우리 집에 열흘 계신 적이 있었다. 결혼한 지 17년이 되었지만 시어머님께서 우리 집에 오신 지는 이번이 세 번째이다.

한 번은 큰 애 5살 때 아파트를 사서 이사해서 이틀 밤, 3년 전 새 집을 사서 집들이 하신 날 하룻밤을 주무시고 가셨던 어머님이 시댁 집을 새로 건축하는 관계로 몇 달간 지인의 외딴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형님 내외분과 조카들까지 함께 지내기는 하셨지만 낮에는 모두 직장에 나가 혼자 집에 계셔야하는 실정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집을 짓는 서 너 달 동안 감옥살이를 하셔야 했다.

금요일 밤 기제사로 시댁에 갔다가 “어머님, 갑갑하시면 며칠 저희 집에 가 계실래요?” 라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짐을 싸시는 어머님을 보며 그동안 얼마나 갑갑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어머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우리 집에 오실 때만해도 이젠 집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되겠다 싶으셨나보다. 그러나 그건 커다란 착각이란 걸 주말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월요일 아침 남편과 아이들은 서둘러 일터로 학교로 향했다. 나 역시 출근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님 저는 좀 늦게 출근하고 두 세 시간 지나면 들어오니까 집에 혼자 계셔도 괜찮으시죠?”라는 나의 말에 “그럼 나는 작은 딸네 데려다 다오. 너 올 때까지 거기에 있으마.” 그래서 어머님을 식당을 하시는 작은 시누이 댁에 모셔다 드리고 출근을 했다.

그 곳은 식당이라 사람들이 오니까 심심하지 않겠다 싶어 가신 모양인데 그 곳도 잠시 점심 장사 준비로 식당은 정신없이 바빴다. 그런 곳에서 팔십의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도리어 손님들께 거추장스럽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바쁜 시간에는 2층 살림집에 혼자 계셨다고 한다.

사실 어머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원하거나 바라는 분은 아니다. 당신 때문에 자식들이 피해를 볼까 걱정하시는 그런 분이다. 그저 누군가가 당신 옆에 항상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셨다.

그러나 요즘처럼 바쁜 현대사회에 살면서 하루 종일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신다. 집에 혼자 계시는 것이 싫어하셔서 볼 일을 볼 때 어머님께 가시자면 다리가 아프다며 마다하신다. 그냥 집에 같이만 있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모르시는 것 같았다.

일찍 시집와 층층 시어른들과 줄줄이 딸린 자식들 북적거리며 살다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사셨건만 나이 들어 어머님 소원하나 들어 줄 자식 며느리 하나 없다.

그런 어머님을 보며 나의 노후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 역시 어머님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앞이 막막하다.

남편은 사업일이니 각종 모임이니 집에서 밥 먹는 날이 거의 없이 늘 바쁘다. 그런 남편과 신혼 때는 많이 싸우기도 했다. 그저 남편이 옆에만 있어주길 원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남편에게는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는 것을 나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늘 바쁜 남편을 뒤로하고 아이들 키우는 일에 목을 매던 나도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고 학원에 갔다가 밤에서야 온다. 그래서 혼자 저녁 먹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온 가족이 밥 한 번 같이 먹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런 나와 어머님과 무엇이 다른가? 나이가 들수록 함께 보다 혼자 있어야 할 시간이 많아지는데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세월이란 놈이 언제 지나갈지 몰라 미리미리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연습해 두어야 하는데...... 어머님께도 남아있는 동안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말씀드리지?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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