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음성소이우체국 근무

나는 운동장을 걷고 있다. 퇴근해서 운동을 나서면 해는 모습을 감춘 뒤다. 귀에는 mp3이어폰을 꽂고 세상의 소리와 차단한 채 잰 걸음으로 걷는다. 하루 중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아들이 군대 간 뒤로 mp3는 내 차지가 되었다.

오늘따라 혼자가 아니다. 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그림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불빛이 무심코 지나쳤던 그림자의 모양을 바꿔 마술인양 흥미롭기까지 하다. 운동하는 내내 달리 모습을 바꿔가면서도 여전히 나를 따라 다니고 있다.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곁에는 매일 지켜주는 그림자가 있었다. 둘은 각별한 사이가 되어 서로를 위해 주었다. 그가 그림자에게만 잘해주는 것이 심통난 바람이 말한다.

그림자는 당신이 기쁘고 밝은 날만 있지 슬프고 어두울 때는 당신 곁에 있지 않는다고 말전주를 한다.

그때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다. 난 당신 곁에 항상 머물러 있었노라고 이야기 한다. 힘들고 괴롭고 어두운 날에는 당신 안에 들어가 있었다고.

심리학자인 ‘융’은 그림자를 무의식속에 있는 나라고 했다. 그림자의 발견이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보석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것을 볼 줄 알고 다스리는 일은 자신을 성숙시키고 삶의 영토를 기름지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림자를 일부러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빛만을 고집하는 사진작가들이다. 정작 그들은 빛을 찍으러 다니지만 빛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그림자를 찾아다닌다.

그림자를 볼 줄 알아야 빛을 느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한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그림자를 기술적으로 담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사진에는 문외한이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 한쪽으로 쏠려 있거나 한 면이 잘라져서 엉망이다.

초점도 맞지 않고 대칭도 시원치 않은 초보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다. 눈에 보이는 피사체만 찍으려고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지금껏,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사진에 담기에 바빴다. 이제라도 그림자가 내 눈에 보인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이제 그것을 인생이라는 작품에 잘 담아낼 일만 남았다. 사진작가나 나, 둘에게 그림자는 여전히 어려운 화두다.

군대에 가 있는 아들은 생과 사의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귀한 체험이듯이 내게 오늘의 그림자는 소중한 경험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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