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미

잠자리에 누워 TV를 켜자 드라마가 방영중이다. 배경은 법원 앞, 성형 수술비를 대달라고 전화한 얄미운 시누이에게 지금 이혼했으니 이젠 남남이라며 큰소리로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외도하는 남편과 헤어진 여자의 표정이 어둡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다.

오늘은 동서의 생일이었다. 며칠 전부터 동서의 생일날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느 해 인가 소고기와 미역을 사준 적은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직접 끓여준 기억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동서한테서 다른 사람이 끓여주는 생일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이번에는 휴일이고 하니 내가 끓여 줘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어젯밤에 미역국을 끓이고 닭볶음도 양념해서 재워놓고 친정엄마가 주신 데친 냉이도 양념을 미리 준비해 담아 놓았다.

아침 일찍 동서에게 전화를 했다. 생일축하 한다고 미역국을 가지고 가니 아침을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고 바리바리 챙겨서 차에 실었다.

아직 운전이 서툴기도 하지만 겁이 많아서인지 혼자서 청주로 나서는 두 번째 길인데도 콩닥콩닥 가슴이 뛴다.

시동생 부부는 청주로 이사 온 후부터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었다. 그때 아이들을 봐주신다고 시어머님이 함께 사셨다.

그러나 몇 년 후 어머니는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 하셨다. 다행히 병원을 다니며 발견을 빨리한 덕분에 지금까지 처방받은 약을 드시며 주간보호소에 다니신다.

시간이 흐를수록 치매가 진행 중인 어머니와 우리 큰아이까지 거기서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나로서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지난날 나또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었다. 이유야 어떻든 어른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언제나 동서 걱정이 앞선다.

한 집안에 시집와서 동서지간으로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가족이 되었다. 슬픔도 같이 겪고 기쁜 일에 함께 웃고 힘들 때 마다 위로해 주고 서로 의지하며 살다보니 친동기간 보다 더 애틋한 사이가 되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격이 후덕하여 늘 베풀기만 하는 형님이 있어 든든하다는 사람도 있다. 배려할 줄 모르는 형님 때문에 아랫동서가 집안을 이끌어가는 이야기도 들린다. 서로에게 미루기만 하고 염치없이 사는 사람도 많다.

동서지간에 좋은 사이로 지내면 온 집안이 평안해 지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청주에 도착하니 동서는 일하러 나가고 없었다. 주말이라 늦잠을 자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었다. 설거지와 방청소를 하고 아들과 대형마트에 갔었지만 마땅한 선물을 찾지 못해 먹을거리며 일상용품만 사가지고 왔다.

오후에 얼굴을 보겠다고 동서가 집에 들렀는데 미역국을 데우더니 한 그릇 떠먹는다.

야간에 운전하는 건 자신이 없어 곧 가야하니 잠깐 나갔다 오자며 호들갑을 떨며 데리고 나갔다.

자꾸만 사양하는 동서에게 봄 티셔츠 하나를 선물했다. 좋은 걸 사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동서는 연신 고마워하며 일하러 나간다.

돌아오기 전, 이른 저녁밥을 지어놓고 세탁기에 빨래를 하고 화장실 청소도 했다. 저녁에 들어온 동서가 오늘은 좀 일찍 쉴 수 있기를...

깜박 잠이 들었던지 눈을 뜨니 내손에 리모콘이 들려있다. 피곤이 몰려온다. TV를 끄고 자려는데 갑자기 동서랑 몇 년 전 주고 받았던 말이 생각났다.

힘들었던 시절이었는지 만약 남편들이랑 헤어진다면 우리 둘이서 같이 살자고 했었다.

잠이 쏟아지는데 자꾸만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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