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미

 

49일 동안의 회향기도가 끝나는 백중날이라 친정엄마를 모시고 칠장사에 갔다. 아침까지도 간간히 내리던 비가 멈추고 구름까지 걷히고 해가 비치니 날씨가 더워진다. 법당 앞의 마당에는 법회가 열리고 있었고 예불을 드리는 사람들과 등산을 왔다가 들른 사람들로 북적였다.

법당 안에 들어가니 오늘따라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리마저 비좁다. 공양을 올리고 가족들의 위패가 걸려있는 영전 앞에서 엄마는 또 가슴 아픈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신다. 나도 눈물이 나지만 엄마가 보면 더 속상하실 것 같아 꾹 참았다. 예불순서도 잘 모르는 나는 절에 갈 때마다 엄마를 따라 열심히 부처님께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지만 언제나 어설프기만 하다.

법회가 열리는 마당엔 앉아있는 사람보다 서서 예불을 드리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 하다. 스님들의 불공소리에도, 바라춤을 추는 비구니 스님들의 고운 자태에도 경건함이 느껴졌다.

합장을 하고 서있는 신도들의 얼굴에선 땀방울이 맺히지만 아무도 덥다는 표현은 하지 않고 조용히 불경을 따라 읽으며 기도를 한다.

중간 중간 설명과 함께 짧은 설법을 하시는 젊은 스님의 목소리에 숙연해 지기도 했다. 처음 보는 합동예불이라 이곳저곳 살피며 한 시간을 넘게 서서 합장을 하고 예불을 드리다 보니 옆에서 다리가 불편하신 엄마는 자꾸만 자세를 바꾸고 계셨다. 예불도 거의 끝나가고 힘드실 엄마를 생각해 이제는 가자고 서둘렀다.

공양간이 있는 홍제관 앞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이동식 천막이 설치되어 점심이 준비 되고 있었다. 봉사하는 보살님들의 권유에 먹고 가기로 하고 비빔밥과 냉국을 받아들고 서서먹는 탁자 한 쪽에 자리를 잡았다. 냉국에는 미역과 오이만 심심하게 들어 있었다. 파,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알기에 담백한 나물을 넣은 비빔밥을 먹었다.

반쯤 먹었을까 등산복 차림의 삼십대 초반쯤 보이는 남자가 밥과 냉국을 들고 와 우리 앞에 자리를 잡고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계속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다. 그걸 보고 엄마는 밥이 적어서 그러는 줄 알고 더 달래서 드시라고 한마디 말을 건네셨다. 그러자 그는 회비를 받아놓고는 이렇게 밖에 안준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순간 나는 이 사람이 다니는 산악회는 회비를 받고 절에서 밥을 먹나 해서 절에서 산악회의 회비를 받느냐고 물었다.

그 젊은 남자의 대답은 엄마와 나를 아연실색 하게 만들었다. 자기는 등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절에서 무슨 기도가 있다고 연락이 와서 엄마를 모시고 왔다고 했다. 회비를 받았으면 음식을 좋게 줘야지 이 맛없는 비빔밥 한 그릇이 뭐냐는 것이다. 지난번 부처님오신 날에는 그래도 먹을 게 좀 있더니만 오늘은 너무하다며 국수도 준다더니 보이지도 않는다고 열변을 토하는 것이다.

백중날 드리는 예불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기도이다. 동참을 원하는 신도들은 기도비를 낸다. 그걸 보고 회비라고 하는 그 젊은 남자는 혼자 와서 밥을 먹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엄마와 나는 서로 쳐다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계속 투덜거리는 그를 앞에 두고 나는 밥을 더 맛있게 먹었다. 싱거웠던 냉국은 시원한 맛이 났다. 다 먹은 빈그릇을 내러 갔다가 설거지까지 해놓고 돌아서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법당 앞에서는 예불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합장을 하고 허리를 깊이 굽히며 절을 하고 계셨다. 그 속에 철없는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가 계실 거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잠이 드셨다. 서툰 운전실력 인데도 언제부터인지 엄마는 편안하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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