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경님

물이 고여 있는 방죽을 좋아한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수많은 수채화가 펼쳐지는 전경이 우리네 삶을 닮았다는 생각에 젖는다.
건너편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는 강태공 한 분이 낚시는 않고 세월을 낚듯 우수에 젖어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다.
빗방울 떨어지는 잔물결에 심취하고 있는 나그네를 마주하며 나 역시 방죽안의 세상에 빠져든다.  
비가 내리는 날엔 빗물을 담는 그릇이 되어 제 그릇에 양이차면 스스로 무너져 물레방아가 되어주는 연 잎이 분주하다.
간간이 비바람이 불 때면 그 출렁임에 모든 것을 내 맡기며 울타리가 되어주는 방죽에는 기품이 가득하면서도 애환이 담겨 있는 듯하다. 
꽃동네를 지나자마자 좌회전을 하면 경사가 심한 내리막을 달리게 된다. 그리고 소박한  열대가구가 살고 있는 유촌리라는 마을에 이르면 작으마한 방죽이 나온다.
그곳에는 해마다 6월 중순부터 수련이 피어나고 이어 홍련과 백년이 핀다.
동리를 닮아선지 연꽃은 앙팡지면서도 도도하여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예쁘다.
화창한 날에 피어나는 흰색과 진자주색의 수련은 아침이면 고개를 반듯이 들어 꽃을 활짝 피우다 정오쯤이 되면 서서히 오므라든다.
신비롭다.
오전이면 활짝 개화하다 열기가 달아오르면 자신의 어여쁨을 오래 간직하려 햇빛을 스스로 가리 운다.
스스로를 지켜내는 연꽃에 비하여 나 자신은 물질적 꽃이 만발하길 소원했다. 
송사리나 잔챙이 물고기 떼들이 몰려든 것처럼 빗줄기가 세차지자 물방울의 움직임이 소란스럽다.
어지러운 방죽의 모습에서 우리 집을 떠 올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생활고에 시달려 얼음에 잠긴 방죽의 모습 같은 시절이 있었다.
방죽만한 땅이라도 있었으면 힘이 될 것 같았다.
가래 끓는 소리가 나는 화물차라도 갖고 싶었다.
따사로운 봄 햇살은 언제쯤 비춰줄지 알 수가 없었고, 한 겨울 문풍지 우는 소리는 우리 집에서만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 보다 지난 해 구제역은 아직도 몸이 얼어붙는 겨울이다.
시간은 쏟아지는 빗방울처럼 지나가지만 그 여파는 몸보다 마음이 춥고 아직도 땅속에 묻어버린 죄책감은 비바람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
거기에 시어머니의 치매는 조금씩 더 해지고 비육농장까지 산업단지로 포함이 된다는 소식이다.
생각은 멍해지고 마음이 쌀쌀했었는데 방죽이 나를 달래주는 듯 고요하고 아늑한 평정을 건네준다. 
우리 가족이 연꽃에 비유한다면 나는 연잎쯤 될 듯싶다.
당연 뿌리는 어머니이고 줄기는 남편이다.
당차게 예쁜 수련은 딸아이를 닮았고 깨끗하게 마음 수련을 하는 이미지를 안겨 주는 백년은 무엇이든 심사숙고하는 큰아이를 닮았다.
홍련은 막내다.
누나나 형한테 할 말 못하고 애잔한 사랑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비바람 맞으며 많은 빗물을 쟁여두는 방죽은 기다리며 받아주고 지켜주는 인내가 있다.
빗물이 차면 쓰러지듯 물길을 터주는 잎처럼 자신의 밥그릇에 꽉꽉 채우기보다 물길을 열어 부드럽게 덜어주는 나눔을 가르쳐준다. 
장마철에 수채화 한 폭 가슴에 담는 여인에게 방죽은 무언의 가르침으로 연꽃처럼 마음 수련을 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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