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님
마늘밭에 열심히 물을 주었다.
타들어 가는 작물만큼이나 내 가슴도 타들어 가는 것은 내가 농부 흉내라도 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물을 주어도 말라가는 마늘을 캐보니 심은 양만큼 나온다.
그것도 알이 작다.
봄에 심어둔 감자를 캔다.
물주기가 힘들어 버려두었더니 씨알이 매우 작다.
봄 내내 가물더니 물이 부족해서 영양분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나 보다.
풀풀 날리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캔 감자는 작년 수확의 삼 분의 이 정도밖에 안 된다.
올해는 나눔이 적어질 것 같다. 날씨가 반란한다. 인간의 이기적인 삶에 경종을 울린다. 편안함과 안일함을 추구하는 너희 맛 좀 봐라! 한다. 그렇게 봄 내내 갈증을 준다.
도시에선 가물어도 부족한 것을 모르고 살았다.
수돗물은 사시사철 철철 나오고 더우면 냉방기 사용한다. 물가가 비싸지는 것 외엔 가뭄에 대한 의식이 약했다.
시골로 오고 나니 자연과 하나가 되는 생활이다. 날씨 정보에 귀를 더 많이 기울인다.
작물을 심는 것과 자라는 데 필요한 자양분은 모두 자연에서 얻어진다. 그래서 날씨는 시골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농사는 하늘이 지어 준다는 말이 있다. 감자 캔 밭에 풀이 보여서 맘이 편하지 않다.
부지런한 농부에게 게으름을 보여 핀잔받는 느낌이다.
완전 무장을 하고 검은콩을 가지고 갔다.
우선 잡초부터 뽑아낸 후 콩을 심기 시작했다. 가뭄으로 흙은 물기가 하나도 없이 모래처럼 흩어진다.
콧속으로 흙먼지가 솔솔 들어와 코가 간질거린다. 물을 주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을 것 같다.
논에 물이 없어 모내기를 못했다고 한다. 밭작물뿐 아니라 모내기를 한 논에도 물이 없어 논바닥이 갈라진다고 한다. 어디에선가 기우제를 지냈다는 뉴스를 봤다.
기우제 지낸다고 비가 올 리 없지만, 그걸로나마 위로로 삼자는 애타는 마음이겠지.
농부들은 가물면 가물어서 힘들고 비가 많이 오면 또 힘들다.
각종 재해를 이겨내고 구슬땀으로 일궈낸 작물들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살아야 한다. 이번 가뭄은 104년 만이라도 한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어서 살 곳이 점점 사라져 북극곰들이 힘들어한다고 한다.
발전과 발달이 남긴 결과다. 물론 발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공존하는 방법도 함께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할 뿐이다.
이기를 조금은 덜 탐하고 살기를 추구해야겠다.
변해가는 기후에 나는 반성을 한다. 문명의 발달은 편리함을 주지만 자연은 맘대로 할 수 없다.
그냥 순리에 따르는 수밖에.
세상도 요즘 가뭄인가보다. 고물가에 허덕이는 서민들. 싸움질하는 위정자들. 서로 잘났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마음엔 이슬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점점 더 앙칼진 목소리가 나온다. 온갖 안 좋은 소식을 접하면서 사막화되어가는 인간의 단상을 본다.
포근하고 촉촉한 소식을 기대하지만, 뉴스 시간마다 나오는 소식들에 전율한다.
메말라 가는 사람들 마음에 단비가 내려 산뜻하고 청량한 소식이 보도되기를 기다려본다.
나 역시 다를 바 없다. 남에겐 넉넉한 마음인데 가족에겐 좀 야박하다.
조금만 잘못한 것을 보면 당장 나무란다.
실수하지 말라는 속마음이 바로 표출된다.
그러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하는데 늘 허사다. 어제는 동생의 이상한 언행을 바로 야단을 쳤다.
좀 우회해서 말해도 될 것을 답답하다는 이유로 냉정하게 상처를 주었다. 그러는 내가 후회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매사 그런 것 같다. 이렇게 내 마음도 가뭄이 든다. 물기가 점점 사라지고 흙먼지가 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삭막해지는 것을 느낀다.
촉촉했던 감정들은 밋밋하게 변해간다. 열정은 안일함으로 변한다.
아직도 많이 남은 인생이라 하다가도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 포기한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나태하게 하는가. 스스로 묻고 대답하기를 수년째 한다.
답 없는 메아리만 내 속을 울린다.
내 심연에 작은 옹달샘을 하나 파야겠다.
버들잎 띄운 한 바가지 물로 갈증을 푸는 청량제 같은 물을 마실 수 있게. 갈라진 내 가슴도 촉촉하게 하고 누구든 나의 옹달샘 물을 마시고 시원함으로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비 한줄기 시원하게 내리는 기대를 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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