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향순<소이면 후미리>

아들아이와 외출을 했다.
방학을 맞이한 터라 읽을 책과 성탄 카드를 사기 위해 함께 나선 것이다. 서점과 문구점을 겸하고 있는 곳에 들러 볼만한 책을 고른후 카드를 구경하는데 아이는 도무지 카드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엄마에게 E-mail로 보내면 되지 번거롭게 무슨 카드냐는 식이다
그래도 선생님께는 정성껏 써서 보내야 되지 않겠냐고 권해봤지만 빙긋이 웃기만 할뿐이다. 강요하거나 야단을 칠 수는 없으면서도 마음 한 켠이 씁쓸했다.
‘문명과 편리라는 이름으로 치닫는 저 아이의 가슴에 두고두고 간직하며 힘들 때 한번씩 거내 볼 심지를 어떻게 심어 주어야 하나.’
요즈음 모 일간지에서는 <무너지는 조선족 사회>라는 르포를 연일 싣고 있다.
중국 땅에서 100년 이상 뿌리 내려온 조선족 사회가 한국 바람에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만 가면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허황된 분위기 때문데 부인은 가정을, 교사는 교육을, 공무원은 공직을 포기하고 떠나오는 것이라며 그 사회의 심각성을 파헤치고 있다.
이 기사에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지난 유월 백두산을 다녀 올 때 연길시에 머물면서 느꼈던 감회가 진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인 190여 만 명 中 75만 정도가 살고 있다는 연변주의 연길시에 들어섰을 때<연변 조선족 자치주>라는 대형 간판이 우리 일행을 반기는데 눈물이 났다. 말로만 듣고 어렴풋이 상상했던 우리 민족들이 억 만리 낯선 땅에서 그렇게 우뚝 서있는 것이었다. 그 자치주를 형성하기까지 그들이 받았을 억압과 인고의 세월들이 우리 가슴을 쓸어 내렸다.
우리 나라의 6,70년대를 생각하게 하는 회색 빛 도시였지만 간판 들마다 반드시, 우리말을 위 또는 우측에 쓰고 한문을 아래쪽과 좌측에 써 놓은 그 정신력이 그들을 당당히 세운 것이었음을 보면서 그렇게 고맙고 대견할 수가 없었다. 저녁에 숙소에 들어가 텔레비전을 켰을 때 우리는 또 놀랐다.
우리 나라의 모든 방송이 그대로 방영되는 것 아닌가. 낯선 이국
땅에서 보게되는‘밤 9시 종합뉴스’가 어찌나 반가운지 과학 기술의 발전을 새삼 뿌듯하게 느꼈다.
그러나 문제의 발단은 바로 그것이었다. 현지 가이드에 의하면 90년대 초반, 한국 텔레비전 방송을 그들이 보게 되고 서로 왕래가 잦아지면서 한국 사회의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에 그들의 정신이 매료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최상인 줄 알고 운명처럼 지켜온 땅을 버리고 몰려와도 좋을 만큼 우리 땅 우리 사회는 바람직하고 탄탄한 모습인가. 저들의 코리안 드림을 충족시켜 줄 정도로 내실 있는 우리인가 말이다. 그것도 아니면서 허망한 꿈만 키워주고 저들의 뿌리를 사정없이 흔들어댄 우리들 모두.
꿈에도 그리던 고국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 나라에 오고 가는 것 환영한다.
좀 나은 환경에서 돈을 벌어 가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그러나 눈물과 의지로 일구어 온 우리 민족의 정신무대 하나가 그렇게 허망히 무너져서야 되겠는가.
한국 바람으로 인한 조선족 공동화(空洞化)현상-주 정부의 고위직에 쓸 조선인 인물이 없고, 조선족 사회의 상권이 한족에게 넘어가고, 100년 이상 조선족의 독무대였던 벼농사에도 한족의 진출이 늘어감-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고 기자는 호소하고 있다.
세찬 바람이 그 곳에만 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질을 높여주고 편리하게 해 주는 매스 미디어. 그것은 생활에 필요한 도구일 뿐 전부가 아닐진대 사람들이 온통 정신과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특히 어렵고 힘든 것은 무조건 피하고 쉽고 편한 것만 선호하는 미래의 주역이 될 우리 아이들. 방학 생활 중 틈만 나면 컴퓨터 텔레비전 앞에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위험수위를 느낀다.
거침없는 바람,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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