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경님

우리 집의 이 번 추석명절은 좀 남 다른 뜻이 있다. 일명 신고식이라고나 할까.
이제까지는 한 분 한 분 조상님들의 기제사를 지내왔지만, 가족 간의 상의 끝에 내년부터는 정기적인 하루의 날을 잡아 조상님들께 예를 드리기로 했다.
그러하니 이 번 추석은 ‘조상님들을 다함께 모시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는 신고식 같은 날인 셈이다.  
조상님께 절을 올리려 사촌들과 함께 서열 순으로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아이들의 성장이 놀랍다.
엎드려 절을 올릴 때면 등허리에서의 무게감이 한 집안의 씨족사회를 상징해주는 것만 같아 뿌듯하다.
어머니의 마음은 더 흐믓하신가보다.
하얀 새치와 넓어지는 민머리인 두 아들의 등을 자꾸만 어루만지며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작은 목소리로 ‘이제까지 지내온 제사를 한몫에 지내 죄송합니다. 나는 이제 늙었습니다.’를 되뇌인다.
어머니의 조상숭배는 신에게 바치는 정성만큼이나 지극하셨다.
산적은 나무를 가늘게 깎아 꼬여 만들고 떡도 손수 집에서 만들었다. 제사는 자정이 다되어야만 지내야 하고 엄숙하며 정갈해야 했다.
옹고집이신 어머니의 정성이 더하여지는 것은 제사뿐만이 아니었다.
가을걷이가 끝이 나면 장독대와 축사 그리고 집 등 터주 신께 몇 시루의 떡을 쪄서 정성껏 올렸다.
보름에 올리는 시루떡과 추석날 밤에 장독대에 올리는 시루떡 등 산제를 지내는 일들까지, 어머니는 치성을 드리는 일로 일생을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믿고 계시는 신의 숭배나 조상을 위하는 정성에는 이유가 분명했다. 자식들만은 짧은 명으로 살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사회생활에서 대성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생명에 중점을 둔 정성 앞에서 며느리인 나로서는 귀찮다는 말을 함부로 드러내 놓고 거부 할 수 가 없었다.
더욱이 아버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셨으니 가슴의 상처가 되어 신에게 더 의지를 하셨고, 조상님들이 대를 잇지 못해 마나님 한분씩이 더 계셨다는 것이 변화를 두렵도록 막아서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세월을 지내오면서 어느 해인가 부터 어머니에게 치매가 오고 기력이 쇠잔해지셨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혼잡한 도시생활을 하려면 후세들을 위해서 제사를 합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여쭸다.
단번에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던 분이 몇 해만에 집집의 제사방식이 다르듯이 우리는 우리식대로 날을 잡아 조상을 모시자고 했다.
기제사는 한식을 지낸 그 다음 주 토요일로 정하였다.
처음부터 수월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지켜 오신 철직만큼의 적극적인 반대는 하지 않으신 큰 이유는 며느리가 절에 다닌다는 믿음과 급성장하는 신세대의 향후를 내다보셨던 것 같았다.
그런데 아차! 뫼를 올리려 하자 탕이 빠졌다. 뿐만 아니라 몇 해 전에 남편은 멀리 여행을 가고 기제사를 깜박 잊다 한밤중에 부랴부랴 제상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나 혼자 떡 대신 롤 케이크를 올리며 “이것도 잡숴보세요. 부드럽고 맛있습니다.”라고 죄송함을 넋두리 했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조상님들도 그 맛이 그립지는 않을까 하는 뚱딴지같은 생각이 들었다.
신고식 하는 이번 상차림에는 롤 케이크를 꼭 올리려고 했었는데  깜박 잊고 말았다.
제사음식을 준비할 때마다 정해진 음식만 고집하라는 법은 없다고 여겼다.
지방마다 혹은 집집마다 사돈끼리도 제사를 지내는 방식이 다르듯이, 상차림은 옛 것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생전의 즐겨 드시던 음식을 올리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또한 아이들이 좋아 하는 색다른 음식을 올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싶다.
명절을 지낸 후거나 기제사로 인하여 집안싸움이 분분한 일들을 자주 본다.
사회의 혼란으로까지 이슈화되어지고 가족 간의 상처만 남기는 제사는 조상님들도 원치 않을 것이다.
명절이나 기제사란 가족이 함께 끈끈한 정을 나누며 자손의 번창을 결속하는 날이라 여긴다.
우리의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친지간의 화합을 위해서라면 핵가족화의 흐름을 따라 간소해 질 필요 또한 있으리라.  
복잡하고 각박한 사회의 흐름을 고려해 결정해주신 어머니가 존경스럽다.
하지만 신고식 올리는 이번 상차림은 탕도 잊고 롤 케이크까지 올리지 못하여 기죽은 신병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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