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본보 취재차장.
김진수 본보 취재차장.

1979년 10월 9일, 8개월 남짓 선생님과 함께 하던 짧은 시간들이 끝나던 날이었습니다. 경기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시골초등학교, 작고 낡은 교실에는 미동의 소년 소녀 30여명이 가을햇살을 받으며 숨죽인 채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남의 학교로 전근가시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큰 마음, 큰 뜻, 큰 그릇이 되거라.”

이런 풍경은 며칠 전 오후에도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소지품을 잃어버린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친구들끼리 서로를 의심하기에 이르자 선생님은 짜리뭉뚝한 몽둥이로 친구들 모두에게 회초리를 드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왜 때렸다고 생각하는지 한 사람씩 말해보라'고 하셨습니다. 한 친구가 울먹거리며 이야기할 때, 선생님과 모든 친구가 울고 말았습니다. 한참을 흐느끼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한 마디 말씀만 남기고 교실을 나가셨습니다. “너희는 큰 마음, 큰 뜻, 큰 그릇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실 선생님은 이 말씀을 제가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오던 3월부터 시작해서 여러 차례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근가시며 주신 선생님의 마지막 이 말씀을 들은 반 친구들은 며칠 전처럼 다시 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저희들 모두는 그렁그렁 눈물고인 눈으로 인사하며 헤어져야 했습니다.

그 후 가끔 선생님은 시골의 저희들에게 편지를 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잊지 않으시고 선생님은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선생님과 헤어진 지 20여년이 지났습니다. 제게는 선생님 사진 한 장도 없습니다. 그만큼 저희와 선생님과의 시간은 다른 선생님과 가졌던 시간들보다 짧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과의 추억은 여느 선생님들과 가졌던 기억보다 더 뚜렷하고 선명합니다. 바로 선생님이 주셨던 한 마디 말씀 속에서 말입니다.

선생님! 20여년전 저희와 함께 하실 때 선생님보다, 제 나이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종은 다르지만, 저도 선생님처럼 어린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 앞에 서며 저는 가끔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도 그들에게 말합니다. “큰 마음, 큰 뜻, 큰 그릇이 되어라.”

사실 선생님이 주셨던 이 한 마디는 제게 꿈을 심어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선생님의 말씀 잊지않고 소중히 간직하며, 계속해서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선생님! 뵙고 싶습니다. 이제는 선생님께서도 많이 변하셨겠지요. 죄송하다는 말씀 다시 한 번 드리며, 선생님을 생각하며 지은 제 졸작의 시에 선생님을 향한 마음을 담아드리며 그만 줄이고자 합니다.

“마음 문” ---雅鳳---

지금은 아득한 얘기 / 살아오는 음성 있으니 / 큰마음, 큰 뜻, 큰 그릇이 되어라 // 갸름한 얼굴 / 반듯한 이마 / 작은 눈 슬픈 눈동자 / 오똑한 콧날 / 굳게 다문 입술로 또박또박 들려주신 한 마디 / 큰마음, 큰 뜻, 큰 그릇이 되어라 // 아지랑이 아롱대는 뜨락에서 / 하늘하늘 코스모스 길가에서 / 머언 하늘 바라보며 / 벅찬 꿈 풀어내며 / 큰마음, 큰 뜻, 큰 그릇이 되어라 // 오늘도 마음 문 두드려 / 영혼을 깨우는 소리 / 큰마음, 큰 뜻, 큰 그릇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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