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윤 경 (음성문인협회원)

고요를 깨우는 이른 아침 전화벨소리는 긴장을 하며 받게 된다.
남편의 동작은 마치 군복무 중인 훈련병처럼 벨이채 두 번이 울리기 무섭게 받는다. 아련히 들려오는 상대방의 목소리는 모돈사(새끼낳는돈사)에서 일하는 농장장인 것 같았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는 남편의 손놀림이 불안해 보이고 모돈사에 일이 좀 생긴 것 같다며 급히 나가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구제역이라는 세계화질병,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에게만 나타나며 코와 입 주위에 수포가 생기는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되는 무서운 질병이다. 몇 해 전 만해도 대만이라는 나라가 구제역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었다.
그당시만 하여도 공감은 갔으나 실감은 나질 않았던 질병이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A급 질병으로 간주한 병이 확산된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축산을 하고 있는 농부들은 질병과의 전쟁을 하며 하루하루를 긴장하며 지내고 있고, 우리 집 역시 불안하고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질병이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확산되면서 위험지역으로 묶이고 이동제한구역인 10km안에 들자 조바심으로 마음 편히 밤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다.
날씨마저 황사바람과 습한 기온으로 축산인의 마음을 잔뜩 졸여 놓다가, 따스한 햇볕이 보석처럼 반짝인지 일주일이 되어가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아이들을 등교 시켜놓고도 남편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다. 모돈사인 숙소에서 우리 집으로 출근하는 아저씨도 오지않고 핸드폰도 받지 않아 마음은 더욱 불안하다.
얼마 후,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질병이 의심돼 신고를 했으니 마음 냉정하게 갖으라는 말과 뒤이어 몇 마디 말을 더 했던 것 같았다.
주저앉고 말았다.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는 말이 이럴 때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왜 하필 우리 농장이란 말인가! 소독, 소독, 오로지 질병과의 전쟁에서 살길은 질병을 차단하는 길뿐이기에 외부출입도 삼가고 소독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다급할 때마다 양심은 온데간데없이 제발 구제역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빌고 빌었다. 오로지 나의 신만이 우리농장을 살릴 수 있다는 인간으로서의 본색이 간절하도록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끝내는 엉엉 소리 높여 울고 말았다.
긴장된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껏 살아보겠다고 고생만 해 온 남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될 것 같은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구제역을 당한 농장주는 외부 출입이 차단되고 나로 인해 이웃농가에게 손실을 입힌 죄로 심적 고통이 심하다고 한다.
만약 구제역이라는 판명이 나면 우리 또한 남편은 그곳에서 바깥출입이 금지된다. 그리고 생각만 해도 끔직한 뒤처리들을 내가 감당하기란 힘이 든다. 한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힘겨워 할 때마다 수호신처럼 도와주는 시동생, 형수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놀라 마침 회사 일로 근처에 있었다며 달려와 주었다.
시동생 차를 타고 상황을 파악하러 모돈사에 도착하니 검역원들이 울타리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
돈사 안에서는 수의사가 검사중이라 했고 농장 안에 들어갔다가 구제역이라는 판정이 나면 꼼짝없이 갇히게 되어 있어 안에서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반갑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보면 아닐것이라고 했다. 희망의 말, 한낮의 뙤약볕에 차안의 기온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몇 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두 손을 모아 떠오르는 모든 신께 제발 도와달라고 빌고 빌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것일가? 시동생이 문을 열며 “구제역이 아니래요”한다. 그 한마디의 말이 끝나며 마주보는 얼굴은 웃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눈물이 쏟아진다. 아! 그때서 알았다. 승리의 기쁨으로 온 몸에서도 물이 흐르는 것을, 찜질방도 이보다 더 시원하진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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