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옥

봄바람이 살랑 살랑, 나뭇가지에 연두빛 새순이 돋아나면 아가씨 마음에 봄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할 때다. 이제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봄이 왔구나 하면 여름이고, 또 금세 겨울이 오는 걸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

1970년대 말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학교 수업이 끝나면 두 살 터울 오빠와 같이 도시락을 들고 뽕나무 열매를 따러 다녔다. 지금은 오디라고 하지만 예전에 우리는 오돌개라고 불렀다.

오돌개를 따서 도시락에 담기도 하고, 바로 먹어서 혀와 손바닥이 검붉게 물들었다. 뽕나무 가지를 부여잡고 열매랄 따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 나뭇가지에 붙은 기어다니는 누에와 비슷하게 생긴 벌레를 손으로 집었다가 기절할 만큼 놀란 기억도 있다.

요즘 웰빙식품으로 인기 있는 오디는 돈을 주고 사서 술을 담그거나 과일과 함께 갈아서 쥬스로 먹기도 하는 데 친정아버지께서 당뇨병이 있으셔서 아이들과 같이 오디를 따러 시골에 갔다.

밭둑가에 있는 뽕나무에서 남편이 나무가시를 잡고 열매를 따 주면 아이들도 나는 바가지에 받았다. 열매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주 작은 벌레도 있고, 씻지 않고 바로 먹기가 꺼려졌다.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서 지금보다 더 깨끗한 열매였을 것이다.

바가지에 따 담은 오디를 아버지께 드렸더니 “니덜이나 가져가거라.” 하신다. 아버지 건강에 좋으라고 따 드리는 걸 속으로는 좋으시면서 사양을 하신다.

아이들과 함께 오디를 따면서 예전에 초등학교 다닐 때 애기도 들려주고,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2남 2녀 중 둘째이면서 장녀인 난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자랄 때는 몰랐는데 아이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지는 지금도 가슴에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1995년 원남면사무소로 공무원 초임 발령을 받았다.

신규 임용을 받고, 업무를 익히느라 야근을 하게 되었다. 겨울이라서 날은 춥고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밤 9시 에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비가 얼어붙어서 길이 미끌미끌했다. 걸어서 30분을 가야하는 데 무섭기고 하고 길도 좋지 않아서 조마조마하면서 걸어 갔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저만치서 손전등 불빛이 보였다.

아버지께서 마중을 나오신 것이다. 안도의 숨을 쉬고 아버지 손을 짚으로 엮은 새끼줄을 들고 계셨다.

얼어붙은 길에 딸이 미끄러져 다치기하고 할까봐 운동화에 칭칭 감고 미끄럽지 않게 걸으라고 급하게 새끼줄을 꼬아서 들고 나오신 것이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자상한 아빠도 아니고, 무슨 잘못한 일이 있으면 소리를 버럭 지르셔서 놀래키기 선수인 울 마보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눈물이 울컥했다.

지금은 버럭쟁이도 아닌 점점 왜소해지는 어깨를 가진 늙어가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예전 그 시절이 그립다. 아버지의 사랑을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곱고 이쁘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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