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영

예부터 우리 조상들이 첫 새벽에 하늘에서 내려온 복이 어느 집에 들어갈까 하고 돌아다니다가, 대문 앞이 깨끗이 청소된 집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대문이 깨끗이 청소 된 집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

그래서 이웃집마다 먼저 일어나 대문을 열고 문 앞과 골목길을 깨끗이 쓸어낸 뒤 대문을 활짝 열어 두는 복 맞이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일요일이면 마을마다 향우반을 조직하여 마을안길 등 청소를 하였으며,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매월 1일과 15일은 청소하는 날로 지정되어 이른 아침 마을 앰프에서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 새마을 노래가 나오고 마을 주민들은 청소도구를 지참하고 마을 회관 앞에 모여서 새마을지도자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다.

청소하고 들어가 다시 자더라도 일찍 일어난 대문 앞을 쓸고 복이 들어오도록 항상 대문을 빼꼼히 열어 두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제일 좋은 건, 비 오는 날이었으리라.

비 오는 날은 당연히 집 앞을 안 쓸어도 됐기 때문이다.

당시 중학생인 나의 일과는 이른 아침마다 우리 집 대문 앞을 비질하는 걸로 시작됐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죽을 맛이었지만, 엄마는 아침마다 나를 들볶아 댔다. 부시시한 눈을 감은 채로 내 키보다 더 큰 빗자루를 들고 비틀거리면 나갔다가 이웃집 여학생이나 어린 꼬마가 우리 집 앞을 쓸고 있는 광경을 목격할 때의 그 면구스러움은 당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그래서 다음날은 큰맘 먹고 일찍 일어나 우리 집 앞은 물론 골목길과, 어제 그 학생 집 앞 까지 쓸어 주는 빚 갚음을 해야 했다.

쓸 것이 있고 없고는 상관없었다. 그것은 집집마다 새벽에 치러야 하는 첫 행사였으니까.

나무 대문이 삐그덕 열리는 소리로 이웃집을 깨웠고 서로 비질을 하며 정을 나눴으면, 며칠 전 자기 집 앞을 쓸어 주성서 고맙고 죄송하다는 인사치레도 해야 했다.

그때는 제집 앞만 쓸고 들어가는 이웃은 흉거리가 되기도 했다.

나는 매일 아침 대문 앞을 쓸고서야 학교에 갈 수 있었기에 늘 쫓기듯 아침밥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비 오는 날은 좀 더 자도 괜찮았기에 그때부터 비 오는 날이 무척 좋았던 것 같다.

눈 오는 날은 눈 치우느라 힘들었고 폭설 때는 어른들까지 나와 법석이었다. 종종 도로변에 (내 집 앞 내가 청소하기, 내 집 앞 눈은 내가 치운다.)라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사라진 우리 풍속이 참으로 아쉽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소한 옛것이 더울 그리워지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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