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득순 (맹동면 농업경영인)

평소 운동부족 탓인지 함박산 중턱도 오르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숨이 가쁘다.

넓은 자리가 있어 쉬어 갈려고 앉았다.
이넓은 쉼터는 나뭇꾼이면 누구나 쉬어가는 곳이다.
골짜기에선 소목에 걸린 방울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어릴적 할아버지를 따라서 이곳에 왔을 때 소등에 얹힌 질마위에 칠월나무를 잔뜩 짊어서 이 산길을 내려오는 나뭇꾼 들과 숨 가쁜 소 주둥이에 묻은 하얀 거품과 방울소리가 지금도 정겨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정상을 오르면서 서 너 능선을 더올라야 한다.
한 능선 두능선을 오를적 마다 한낮의 찬바람은 소나무 가지를 흔들며 상큼한 솔 내음을 피워 놓는다.

산 아래로 희미하게 보이는 25평의 천국 우리집, 여기서 나의 생활활동 반경을 눈으로 짚어보니 미미한 개미들 보다 다를 게 없다.
걷다가 쉬다 세시간이 넘어서 오르고 싶었던 함박산 정산에 올랐다.
동쪽과 남쪽으로 비쭉 삐쭉 솟은 높은 산들은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아!...내어릴적에 이산에 올라와서 본 내 고향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4개 읍 면의 산이 합친 높은 산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장엄하다.
산아래서 내려다보이는 크고 작은 마을의 역사와 전설이 타임캡슐되어 여기에 묻혀 있는 듯 하다.

함박산 우측으로 우뚝 솟은 소속리 산을 등지고 자리 잡은 곳, 이곳은 세계인이 찾아와서 사랑을 배우는 천사의 집 꽃동네다.

소속리산 봉우리가 거대한 성모마리아상처럼 보인다.
땀을 흘린 나에 몸은 찬바람이 시원한 바람되어 땀을 식혀주고 잠시 그 자리에 머물게 하였다.

함박산에서 바라다보이는 서쪽들녘은 마치 거대한 호수처럼 백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게 웬일일까! 내 눈을 의심했다.

구불 구불한 농로길에 까뭇 까뭇한 벼포기만 늦겨울의 들녁을 지키고 있을줄 알았는데, 소득이 높은 경제작물을 심으려고 설치한 시설비닐하우스가 흰물결처럼 밀려오고, 콩을 허트러 놓은 듯 무분별하게 들어선 공장들, 불과 몇 년전 이시간 때면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올 농촌마을엔 공장 굴뚝에서 뿜은 검은 연기 뿐이다.

나는 어렴풋이 보릿고개의 시절을 알고 있다.
보릿고개가 없어진지가 40년 안팎일 것이다.
쌀1말을 꿔먹고 일주일을 일해주던 것을 보아왔다.
IMF 위기가 닥칠때도 쌀만큼은 유축하고 지켜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날수가 있었을 것이다.

한발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부 당국에는 문제가 있다.
삼년전만 해도 휴경논마다 모를 심으면 지원금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논을 휴경하는 농가에게 보상금이 나온다고 하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언제부터 쌀이 대접받지 못하는 천동이가 되어 버렸던가.
모주간지에서 ‘장수비결은 세끼밥 꼭 먹는 것이 비결이라 했다.
쌀에는 탄수화물이 풍부하고 가바(GABA<쌀눈>)라는 물질 때문에 혈액내 중성지방을 줄이고 간기능을 높여줘 성인병을 예방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의 입은 서구화로 변해간다.
잡곡밥과 김치와 청국장은 생각없고, 피자니, 햄버거등 인스턴트 식품을 더 좋아한다.

신토불이란 단어가 새삼 떠오른다.
식품학계에서도 쌀을 이용한 식품들을 많이 연구 개발해서 저 들녘에 이는 물결이 봄 여름은 녹색물결로 가을은 황금물결로 일어야 한다.

먹이사슬이 끊기면 생태계가 파괴되는 자연의 이치처럼 황금물결이 일지 않으면 농민과 공생하는 모든 사람은 이 땅을 떠날 것이다.

아기를 등에업고 큰아이는 걸리며 힘겹게 걸어가는 엄마들의 모습이 아름답드시 가을의 들녘은 황금빛 벼가 익어가야한다.
흙은 생명이요, 농촌은 모든이의 고향이며 쌀은 환경 파수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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