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두수(漢詩 전문가)

勝敗兵家事不期 (승패병가사불기) 包羞忍恥是南兒 (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才俊 (강동자제다재준) 捲土重來未可知 (권토중래미가지)

 

승패는 병가에서도 기약할 수 없는 일, 치욕을 안고도 참아 내는 게 남아라오.

강동의 재주 많은 젊은이들과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왔다면 (승패는) 알 수 없었을 거요.

‘작은 두보’라는 뜻의 ‘소두(小杜)’라 불리는 만당(晩唐)시인 두목(杜牧)이 항우(項羽)가 죽은 지 천년 후, 오강의 여사(旅舍)에 머물며 지은 제오강정(題烏江亭)이다.

오강(烏江)은 유방(劉邦)과 건곤일척(乾坤一擲) 흥망을 건 해하(垓下)의 전투에서 항우가 대패한 뒤에 파란만장한 31년의 생애를 스스로 마감한 곳이다.

권토중래라는 고사가 여기에서 나왔는데, 항우가 패전의 치욕을 참아내고 강동의 자제들을 규합하여 훗날을 도모했더라면 천하의 주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는데, 자존심이 강하고 마음 또한 순진무구하여 그런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말이다.

항우는 대개 힘만 믿고 덤비는 무식한 장수의 대명사처럼 불리지만, 사실 그는 책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전술에도 능했다고 하니, 한신과 진평 등의 모사가 설 자리가 없게 되어서는 결국 등을 돌리고 칼을 겨누게 되었던 것이다.

'얼굴이 두껍고 마음은 검다'라는 ‘면후심흑(面厚心黑)’을 줄여서 '후흑(厚黑)'이라고 하는데, 청나라 말기의 학자 리쭝우(李宗吾)는 정치판의 처세술서 “후흑학(厚黑學)”에서 "후흑하지 못한 자들이 천하의 패권을 잡았던 예가 없다"고 세세한 고증을 통하여 밝혔는데, 1911년 중국에서 이 책이 발간되자 곧바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마오쩌둥(毛澤東)이 탐독했다고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초한지 후흑학’(신동준 저)이 출간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초한지(楚漢志)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각기 후흑박백(厚黑薄白)한 인간성을 형태별로 분류하고 그 처세의 성패를 고찰한 것으로, 항우는 얼굴이 두껍지 못한데다가 속이 검지도 못한 '박백(薄白)'한 인간형으로 분류하고, 유방은 반대로 뻔뻔하고 음흉하다는 ‘후흑(厚黑)’한 인간의 대표형으로 묘사했다.

리쭝우는 중국 3대 기인 중 한명으로, "공자를 따르느니 나를 따르라"며 자신을 종사로 한다는 뜻의 '쭝우(宗吾)'로 개명해서, 오만하게 공맹(孔孟)의 도를 폄훼하고, 편협하게 삶의 가치를 오직 ‘싸움에서 이기는 것’에 두었던 유가의 이단자이다.

국운이 쇠미해진 당나라 말기, 시인 두목은 제오강정(題烏江亭)이란 시를 통하여 박백(薄白)한 항우가 ‘권토중래’하지 못한 안타까운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당시 후흑(厚黑)한 자들의 탐욕스러운 치세로 인하여 부패한 나라의 운명을 개탄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시간이 나면 꼭 읽고 싶은 책’ 중에 하나로 ‘후흑학’을 지목했다고 하니, 참으로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후흑의 처세술’이 성행하는 세상에서 인류공영은 고사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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