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길 시인

 여름은 도둑고양이의 발걸음 소리처럼 살며시 시작하는 듯 하더니 많은 이야기를 엮어 내라며 낮이 밤을 서서히 삼켜 간다. 해의 긴 꼬리를 따라가다 그만 아카시아 나무에 걸려 나무 뒤에 숨으려 했더니 바람이 아는 척하며 꽃잎을 날려 준다.

여름밤은 아무리 변장을 하려 해도 하얀 면사포 속의 여인처럼 투명하기만 했다.

아직은 더위가 어디쯤 왔느냐고 묻기가 이른 여름이기에 아침저녁 바람의 옷자락을 잡고 건너가는 낚싯바늘처럼 생긴 6월을 여기저기에 던져본다.

무엇이 저 바늘 끝을 물고 하늘을 향해 퉁겨 올라올까? 흑, 꿈에도 생각지 않던 기억이 오른다 해도 가슴에 품어 주리라 생각한다. 어릴 적 날이 더위 물이 그리울 때면 수영장처럼 놀러 가던 곳이 있었다.

입장료도 필요하지 않고 수영복에 수영모 갖추지 않아도 좋은 곳,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 떠는 소리와 나무 방망이 소리가 정겨운 곳, 음성 천 수정교 아래 물 맑던 실개천과 소담한 어머니들의 빨래터는 동내 개구쟁인 친구들의 한여름의 소중한 놀이터였다.

그 빨래터에서는 엄마들의 빨래 속에서 비벼지고 맞아가며 주인도 모르게 빠져나온 동전들이나 반지, 가락지 등이 보물처럼 물밑 흙속에 묻혀 있었다. 또래 아리들보다 꾀가 많다고 자부한 던 그 시절 친한 친구들과 같이 부슬비가 오는 날이면 삽이며 채를 들고 빨래터에 나가 물속 흙을 퍼 올려 보물들을 건져 올리면 많게는 백 원짜리 동전이 이삼천 원 정도 수입을 거둘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누구네 집에서 잃어버렸을지 모를 금반지도 건져 올 릴 수 있었다.

금반지를 건진 하루는 생각이 많았다. 사연은 빨래터에서 반지를 잃어버린 엄마들은 없고 제각기 잃어버린 사연이 한결 같이 도둑을 맞았다는 이야기에 동네가 그 이야기로 극성을 부렸던 시절 잘못하면 도둑으로 오해받기에 딱 좋았기에 반지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 놓을 수도 없었다. 이야기를 한다 해도 금이고 값나가는 물건이었기에 모두가 자기 것이라고 우기면 엄마들 간에 다툼이 일어날까해서 말은 못하고 보관만 하던 어느 날 아마도 가장 치욕적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몇 차례에 걸쳐 건져 놓은 여러 개의 반디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함께한 친구의 입에서 그 엄마에게 이야기 되었는데. 문제는 과정은 없고 반지를 갖고 있다는 말만 전해져 꼼짝없이 도둑으로 오인을 박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엄마들이 들이닥쳐 훔쳐간 반지 내 놓으라 막무가내로 따지는 통해 변변한 기회도 없이 반지를 꺼내 놓았다 도둑놈을 키운다느니 몹시 나쁜 놈이라느니 갖은 욕설을 다 들은 다음에야 엄마의 강력한 항의로 보관이유를 애기할 수 있었다.

몰려와 따지던 엄마들이 이야기를 듣고 이해를 해 주며 부모님께 죄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이후론 빨래터에 나가 용돈을 건질 수 없었다. 빨래를 하기 전 더 꼼꼼하게 주머니 속을 정리하고 반지들을 관리하여 그 물속엔 더는 금전들이 나오질 않았기 때문이다. 물로 해피엔딩으로 끝난 이야기지만 지금은 없어진 그 빨래터 자리에서 달려가는 바람을 따라 다리를 건너다보면 그 길게 보이던 여름의 해님도 서산 밑으로 꼴깍 넘어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용길아, 밥 먹어라.”라고 부르는 소리에 옷을 입은 것도, 안 입은 것도 아닌 상태로 달리던 초여름 어릴 적 날도, 세상을 모두 잠수시킬 듯 한 노여움으로 퍼 붇던 엄마들의 우악스런 소리도 흔적 없이 사라진 그곳 음성천 수정교 밑 맑은 물 솟던 그 빨래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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