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원룡씨 국립박물관장, 서울대교수, 공주 무녕왕릉 발굴단장, 미술사학자, 수필가등 다양한 경력이 주렁주렁 달렸던 그 분이 돌아가신지도 이제 오년쯤 되었을까.
여기(餘技)로 그렸던 동양화가 선비 그림으로 괜찮아서 한 장 부탁 드렸더니 암 투병 중이라 못그린다며 미안하다는 엽서를 보내 주셨던 분이시다.
그가 발굴한 경기도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물 발굴지에 화장해 뿌려달라 유언한 분이셨고(후손들이 그렇게 했다) 우리나라 근대화가로 유명하신 장욱진씨와는 같은 서울대 교수로 근무 했었다.
그의 그림 전시회에서 당시 한달치 월급으로 그림 한점을 사 연구실에 걸어 두었다.
죽기 몇 년전 가까운 사람의 보증을 서 주었다가 살던 집이며 모아둔 작은 재산까지 몽땅 압류가 되어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려운 입장이 되었다.
어느날 우연히 연구실벽에 걸어둔 장욱진씨의 그림이 꽤 비싸게 팔린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현대화랑 주인 박명자씨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그림 내용을 듣고 삼십평 아파트 한채값을 주겠다는 얘기에 놀라 팔지않고 기분좋게 그림을 보면서 그 위기를 극복 하였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장욱진씨의 그림은 남발하지 않아 귀하고 천진스럽고 편안해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림처럼 깨끗하게 살다간 생이 “좋은 사람이 좋은 그림을 그린다.”고 믿는 사람이 되도록 했다.
우리나라는 화가들도 많고 그림도 많지만 억소리 나는 그림값을 받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그림값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높낮이의 차이가 크다.
그런 점에서 그림의 묘미가 있다고도 하겠다. 아무래도 예술성 보다 돈의 가치가 보통사람들 에겐 더 흥미로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작 시비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화(古畵)는 가짜가 진짜로 팔리는 경우가 많다.
진품명품에도 더러 그런 예를 보았을 것이다. 물건은 적고 사고자 하는 사람은 많고 잘 만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도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안목을 키워 실수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꽤 오래전에 아는 장사꾼으로 부터 이백여년전 전주사람 창암 이삼만의 글씨 두폭을 얻은 적이 있다.
초서로는 당대 제일 이라는 평을 받았고 평생 벼루세개를 구멍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이다.
낙관이 있었으나 미심쩍어 그냥 두었다가 몇 년전 어느 화랑 주인에게 보여 주었드니 깜짝 놀라며 괜찮은 조선 초기 백자 항아리와 바꿔 주었다.
생각치도 않던 거래라 기쁘긴 했지만 한동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옛물건의 가치는 알아 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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