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호

내가 초등학교(지금은 초등학교)다니던 시절은 1970년대 후반이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서울이라는 곳에 구경을 갔다. 그때만 하더라도 서울에 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외삼촌이 서울에 살고 계셨기 때문에 방학을 이용하여 갈수가 있었다. 1학년 때부터 가고 싶었지만, 엄마가 어리다고 해서 2년을 더 기다려 3학년 때 처음으로 서울을 갈 수가 있었다. 그때는 동네 아저씨나 학교 선생님께서 두 손으로 얼굴의 귀 쪽을 감싸고 하늘로 추켜올리면서 “서울구경 잘해라”라곤 했었다. 서울 가기 며칠 전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소풍 전말 잠이 오지 않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설레고 좋았기 때문이다.

시골집인 주덕에서 완행버스를 타고 서울을 가려면 거치는 정류소만도 열 군데가 넘었고 시간도 5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경기도 구간은 거의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충북 구간은 일부 포장이 안 된 곳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안다.

점심 먹고 곧바로 버스를 타면 저녁때가 다 돼서 서울 성동구 마장동 터미널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동구 어디쯤인 것 같은데 큰 다리를 지나면서 플래카드인지 표지만인지 길게 가로로 쓰인 문구가 기억난다. “여기부터 우리의 자랑스러운 서울입니다.” 지금 보면 조금은 유치한 문구인 것 같다. 그때 나는 야! 진짜 여기부터 서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도 작지만 그때도 아주 작았었다. 3하견 생활기록부 같은 것에 키와 몸무게를 기록하는 것이 있는데 키는 기억이 안 나고 몸무게는 18kg으로 기억을 한다. 그것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최저 몸무게가 20kg부터 위로 막대그래프를 그렸었는데 나는 20kg가 안 되었기 때문에 담임선생님께서 맨 밑선 아래에 점을 찍고 괄호 안에 18kg이라고 쓴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서울 갈 때 형과 누라랑 같이 갔는데, 나는 몸집이 작아서 버스비를 안 내고 탔다. 그 당시에도 초등학생부터는 요금을 냈는데 형이 나에게 안내양이 차표 검사를 하면 너는 아직 학교에 안 갔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해서 거짓말을 했지만, 양심에 걸리기도 했고 안내양에게 들킬까 봐 겁도 많이 났다.

서울에 가니 말로만 듣던 사람은 왜 이리 많고, 자동차도 그리 많던지 외삼촌께서는 장사하셨는데 시골에서는 잘 먹지도 못하는 바나나랑 맛있는 과일을 많이 사 주셨다. 그리고 동물원 구경도 처음 했는데 그때는 동물원이 창경원에 있었다.

하루는 외삼촌께서 큰맘 먹고 백화점 구경시켜 준다고 명동으로 갔다. 롯데 백화점 아니면 미도파 백화점 둘 중에 한 군데를 갔는데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미도파 백화점인 것 같다.

처음 가는 백화점이 신기하기만 했는데 나는 여기서 사고를 쳤다. 마네킹에 옷을 입혀놓은 진열장 옆에 키가 큰 화병이 있었고 조화인지 생화인지 모르지만. 꽃이 꽂혀 있었다. 나는 신기해서 꽃을 살짝 만진 것 같은데 꽃병이 와장창 깨져버린 것이다. 꽃병이 가늘고 키가 커서 살짝만 건드려도 넘어간 것이다.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종업원인 사람이 나에게로 달려와서 너 어디 사니? 너 누구랑 왔니? 하면서 물어보는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무척 당황했다.

그 순간에는 외삼촌과 형이 내 바로 옆에는 없었으나 약 10여 미터 밖에서 나를 보고 있었는데 “너는 이곳에 혼자 왔다고 하여라.”하여라 하는 뜻의 눈빛인 것 같아서 나는 종업원에게 혼다 왔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 뒤의 상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종업원도 당황했을 것인데 사고범인인 꼬마가 혼자 왔다고 하는데 어쩔 것인가? 집에 와서 외삼촌은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형에게는 많이 혼났다.

이렇게 나의 처음 서울구경은 지금도 아련히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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