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옥

엊그제 열린 것 같이 감격과 가슴 졸이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의 눈부신 활약을 생각하고 있노라니 어릴 적 집 근처 논바닥과 개울가에서 어설프게 스케이트 타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주 어릴 적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어는 추운 겨울이었다.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논바닥이 얼면 가을철 황금 물결이었던 논바닥은 어느새 시골 동네 개구쟁이들의 최고 놀이터인 임시 썰 매장 으로 바뀌게 된다.

낡은 검정 가죽구두에 길고 날카로운 칼날이 달린 오빠의 스케이트를 몰래 가지고 친구와 함께 얼음판으로 달려갔다. 유난히 작은 발에 어우리지 않게 큼지막한 스케이트를 타려고 양말을 겹겹이 신고, 있는 힘을 다해 발을 꽁꽁 묶은 다음 미끄러운 얼음판을 발버둥거리며 일어서 보려고 여러 번 발버둥 쳐 보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나지막한 논두렁을 벽 삼아 몸을 곧바르게 일으켜 보려고 온 힘을 다해 보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다시 친구의 두 팔을 의지해서 여러 차례 도전해 보았지만 제대로 일어서는 것은 무리였다.

친구와 번갈아 가면서 스케이트를 신고 일어서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면서 얼음을 지치느라 유난히도 짧은 겨울 해는 아쉬움을 남 긴 체 서쪽 산으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순간 친구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잠깐만 기다리라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이었다. 잠시 후 돌아온 친구의 작은 팔에는 알록달록 커다란 꽃 그림이 화려하게 그려져 제법 비싸게 보이는 고급 밍크 담요가 안겨져 있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나지막한 논두렁을 벽 삼아 열심히 걸음마 연습을 했고, 그런 우리를 도와주기라도 하듯 그날따라 밤하늘의 달님도 유한히 밝게 비춰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우리는 저녁 먹는 시간을 잊은 것은 둘째 칙 밤이 깊도록 신나게 걸음마를 교대로 연습했다. 새벽녘이 되어서 문득 정신을 차린 우리는 밍크 담요를 친구의 엄마 몰래 빨리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주섬주섬 담요로 접어들고, 나는 스케이트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사건은 친구의 집 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밤새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친구의 엄마는 느닷없이 친구의 뺨을 힘껏 내리치셨다.

지금에서야 그날을 생각하면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때 그 밍크 담요는 상당히 귀한 것이었다. 아마도 당시 새색시가 시집을 올 때 혼수로나 해올 만큼 귀하고 비싼 물품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귀하게 여겼던 밍크 담요를 철부지 우리는 얼음판 위에 깔고 신나게 놀았으니 친구의 엄마는 얼마나 속이 타고 화가 많이 나셨을까 상상이 간다. 그 당시 친구의 엄마는 집 나가 저녁이 지나고 새벽이 되도록 귀가하지 않는 딸의 걱정보다는 담요를 가지고 사라진 딸이 괘씸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거기에 함께 동조했던 딸의 친구인 나는 얼마나 이웠을까?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황당한 아이디어를 행동에 옮겼는지 ….

그렇게 우여곡절 속에 스케이트를 배워 신나게 얼음을 지치던 옛날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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